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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로그/With a Snap37

2013년 겨울, 낙산사 잘 가고 있나요? 당신을 보내고 나는 겨울 산사를 혼자 거닙니다. 당신이 떠난 자리가 공허해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당신이 떠난 자리에 바람이 들어차거든요. 대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수평선에서부터 거친 질감으로 파도를 그립니다. 바람은 파도와 함께 내게로 오지요. 한폭의 그림을 내 눈 앞에 펼쳐 보이고, 바람은 마지막 붓끝을 털어내듯 풍경風磬을 울립니다. 잘 가고 있나요? 바람이 부니까 당신이 없어도 나는 괜찮습니다. - 2013년 겨울, 낙산사. 사진 : 아이폰4 2014. 2. 24.
여름 폭죽 사랑은 여름 밤바다 위의 폭죽처럼 반짝였다. 순간이었으므로 피었던 불꽃은 지고, 잔상이 남은 자리엔 어둠이 스미기 시작했다. 끝없이 설렘을 길어올리며 항해할 것만 같던 사랑은 점점 말라 부서지고, 끝내는 폐선(弊船)처럼 비린내를 풍기며 모래사장 위에 방치되어 버렸다. 우리 사이에 어둠이 스미기 전, 사랑이 폭죽처럼 꽃 피었던 그 순간, 시간이 정지될 수 있었다면, 너와 나는 더 좋았을까? - 2013년, 여름의 거진 바다 사진 : 아이폰4 2014. 2. 23.
봄밤 까만 밤이 오고, 노랗게 달이 뜨고, 하얗게 목련 꽃봉오리가 벌어진다. 자연은 스스로 암전을 만들고 조명을 켜고 반사판을 펼친다. 그 아득한 봄밤, 목련 꽃봉오리 하얗게 핀 나무 아래, 누군가는 뜨겁게 사랑을 하고 누군가는 실연으로 울음 삼키며, 그렇게 모두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된다. - 2012년 봄밤, 목련나무 아래 사진 : 아이폰4 2014. 2. 22.
도청항 우린 섬 위에 그림자처럼 서서 육지로 가는 그날의 마지막 배를 바라보았다. 그날의 태양은 동반구를 곡선으로 넘어가며 잘 익은 빛무리를 남겼고, 우린 그 빛무리에 취해 한 3년만 여기서 같이 살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 2011년, 청산도, 도청항 사진 : 아이폰4 2014. 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