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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박쥐 - 채호기 지독한사랑(문학과지성시인선119)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지은이 채호기 (문학과지성사, 1992년) 상세보기 박쥐 - 채호기 나의 집은 동굴입니다 하늘은 별도 없는 검은 고무판 때로 매캐한 연기가 새기도 합니다 나의 집에는 공공연히 토막난 시체들이 썩어가고 뼈들이 하얀 인광을 반짝거리기도 합니다 겁 많고 어리석은 여자들이 윤간되기도 하지만 비명은 한번도 바깥으로 새어나간 일이 없습니다 음흉하기만 한 벽들은 비명마저 약한 자에게 되돌려주고 맙니다 나의 집은 감옥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 사실을 오래 기억하지 못합니다 , 1992, 문학과 지성사. 01. 어둠 속의 한 줄기 한국투명성기구에서 제정한 2011년 투명사회상 수상자로 주진우 기자(시사 IN), 영화 , 이상돈(인천광역시 감사옴부즈만), SBS.. 2011. 12. 8.
[시]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 문태준 그늘의발달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지은이 문태준 (문학과지성사, 2008년) 상세보기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 문태준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몰랐지 늦가을을 제일로 숨겨놓은 곳은 늦가을 빈 원두막 살아도 살아갈 곳은 늦가을 빈 원두막 과일을 다 가져가고 비로소 그다음 잎사귀 지는 것의 끝을 혼자서 다 바라보는 저곳이 영리가 사는 곳 살아도 못 살아본 곳은 늦가을 빈 원두막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못 살았지 , 2008, 문학과 지성사. #01 늦가을을 살아도 늦가을을 몰랐지 있어도 있는 줄 몰랐던 때가 있었다. 어떤 것에 대해서는 그랬다. 젊음이 그랬고 친구가 그랬고 사랑이 그랬다. 때로는 나이를 든다는 것이 그랬고 때로는 내 입에서 튀어나간 가시돋힌 말들이 그랬고 때로는 이별이 그랬다. .. 2011. 11. 9.
[시] 그리운 우체국 - 류근 상처적체질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지은이 류근 (문학과지성사, 2010년) 상세보기 그리운 우체국 - 류근 옛사랑 여기서 얼마나 먼지 술에 취하면 나는 문득 우체국 불빛이 그리워지고 선량한 등불에 기대어 엽서 한 장 쓰고 싶으다 내게로 왔던 모든 이별들 위에 깨끗한 우표 한 장 붙여주고 싶으다 지금은 내 오랜 신열의 손금 위에도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시절 낮은 지붕들 위로 별이 지나고 길에서 늙는 나무들은 우편배달부처럼 다시 못 만날 구름들을 향해 잎사귀를 흔든다 흔들릴 때 스스로를 흔드는 것들은 비로소 얼마나 따사로운 틈새를 만드는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이별이 너무 흔해서 살아갈수록 내 가슴엔 강물이 깊어지고 돌아가야 할 시간은 철길 건너 세상의 변방에서 안개의 입자들처럼 몸을 허문다 옛사.. 2011. 9. 30.
[시] 기억의 집 - 이병률 찬란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 현대시 지은이 이병률 (문학과지성사, 2010년) 상세보기 기억의 집 - 이병률 기억을 끌어다 놓았으니 산이 되겠지 바위산이 되겠지 여름과 가을 사이 그 산을 파내어 동굴을 만들고 기둥을 받쳐 깊숙한 움을 만들어 기억에게 중얼중얼 말을 걸다 보면 걸다 보면 시월과 십일월 사이 누구나 여기 들어와 살면 누구나 귀신인 것처럼 아늑하겠지 철새들은 동굴 입구를 지키고 집이 하나로는 영 좁고 모자란 나는 해가 밝으면 동굴을 파고 파고 그러면 기억은 자꾸자꾸 몰려와 따뜻해지겠지 그 집은 실뭉치 같기도 하고 모자 같기도 하며 어쩌면 심장 속 같기도 하여서 겁먹은 채로 손을 푹 하고 찔러 넣으면 보드랍고 따스한 온기가 잡혀와 아찔해진 마음은 곧 남이 되겠다고 남이 되겠다고 돌처럼.. 2011.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