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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로그/My Anthology4

Rain Shower 이렇게 하늘이 흐렸던 날, 도서관 밖을 나서려는데 차가운 것이 정수리에 떨어졌었다. 가슴 앞으로 바른손을 펼쳐 내밀었더니 성기게 떨어지는 빗방울이 느껴졌고, 이윽고 빗방울은 굵은 빗줄기가 되어 내 시야를 가로막았다. 몇몇 사람은 양손으로 손가리갤 하고 잰걸음으로 빗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나 바깥으로 나서려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하나 둘 도서관 처마 밑으로 모여들었다. 다들 우산이 없었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내리는 갑작스러운 비. 그때 내 옆에 당신이 왔었다. 당신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비가 쏟아지는 걸 바라보다 휴대폰을 들여다 보다 하며 어쩔 줄 몰라 했었지. 비는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고, 바닥에 부딪힌 빗줄기들은 무수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우리의 발을 적시기 시작했었다. 신발이 젖을 .. 2012. 4. 5.
채변 봉투 1 국민학교 3학년 때 마당에 신문지를 깔고 온힘을 다해 똥을 누는데 우리집 백구가 다가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내 똥을 나오는 족족 게걸스레 먹어치웠다. 순수혈통인 줄 알았던 우리집 백구는 완전 똥개 새끼였었나 보다. 그 개새끼는 내가 힘들게 눈 똥을 먹어치우고는 쩝쩝 입맛까지 다셨다. 그리고는 다음에 나올 똥을 기대하는 눈치로 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쪼그리고 앉은 나는 다시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등 뒤로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내 똥 먹지 말라고, 채변 봉투에 담아가야 할 똥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다음날, 빈 채변 봉투를 가져간 나는 어제 우리집 개새끼가 내 똥을 다 먹어치웠다며 짝에게 똥 좀 나눠달라고 수치스럽게 속삭였다. 初 : 2010. 11. 19. 금요일 2010. 11. 19.
변기 청소 오랜만에 변기를 닦는다. 오래 묵어 미끌거리는 뿌연 물때와 변기에서조차 소화불량인 검은 잔변들과 점점이 튀어 말라붙은 누런 소변의 잔해들은 지저분하게 변기를 옹위하며 눌러붙어 있다. 이것 참, 얼마 만에 변기를 닦는 건지. 락스로 군세를 혼란시키고 청소솔로 병력들을 제거하고 물을 부어 널부러진 시체들을 쓸어버리고 마른 걸레로 축축한 물기를 닦아내면 변기는 비로소 평화로워진다. 아! 반짝반짝 윤이 나는 변기, 무선공책의 여백마냥 결백하다. 변기가 평화로워지자 결백한 변기 위에 배변의 욕구가 치민다. 맑고 시원한 퐁당! 소리가 듣고 싶다. 初 : 2010. 11. 18. 목요일 2010. 11. 19.
1st Mini Anthology, 배설의 욕구 序文 휴지가 없으면 참 난감한데도 배설의 욕구는 더욱 커진다네 2010.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