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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배를 밀며 - 장석남 지금은간신히아무도그립지않을무렵(문학과지성시인선156)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 현대시 지은이 장석남 (문학과지성사, 1995년) 상세보기 배를 밀며 - 장석남 배를 민다 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 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없이 밀려들어오는 배여 , 1995, 문학과 지성사. # 사랑은 밀려들어오는 배.. 2011. 4. 22.
[시] 목포항 - 김선우 내혀가입속에갇혀있길거부한다면(창비시선194)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 현대시 지은이 김선우 (창작과비평사, 2000년) 상세보기 목포항 - 김선우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 막배 떠난 항구의 스산함 때문이 아니라 대기실에 쪼그려앉은 노파의 복숭아 때문에 짓무르고 다친 것들이 안쓰러워 애써 빛깔 좋은 과육을 고르다가 내 몸속의 상처가 덧날 때가 있다 먼 곳을 돌아온 열매여, 보이는 상처만 상처가 아니어서 아직 푸른 생애의 안뜰 이토록 비릿한가 손가락을 더듬어 심장을 찾는다 가끔씩 검불처럼 떨어지는 살비늘 고동소리 들렸던가 사랑했던가 가슴팍에 수십개 바늘을 꽂고도 상처가 상처인 줄 모르는 제웅처럼 피 한 방울 후련하게 흘려보지 못하고 휘적휘적 가고 또 오는 목포항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 열렬.. 2011. 4. 12.
[책/시] 호사비오리 - 이한종 호사비오리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 현대시 지은이 이한종 (북인, 2010년) 상세보기 이한종 시인의 유고 시집 를 읽었다. 총 63편의 시들로 엮어졌다. 각각의 시들은 지면 위에서 저마다의 이야기로 아슴푸레 빛났다. 시인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었다. #01 나와 세상의 일치 첫 시는 '호박순'이라는 시이다. 나는 이 시가 序詩로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호박순이 오엽송 가지 끝에서 자꾸 하늘로 기어오르려 / 꼼틀꼼틀 한다 / 가느다란 더듬이로 허공을 감으며 오르려 한다 / 내 안의 허공도 이 세상 그 무엇의 더듬이에 감긴다 / 고개 번쩍 치켜든 호박순 / 내 의식의 나무 가지 끝에서 자꾸 하늘로 기어오르려 / 꼼틀꼼틀 한다"('호박순' 전문) 이 시를 통해 시인은, 시집 뒤편에서 정진규 시.. 2011. 3. 10.
[시] 바다의 탯줄 - 이한종 호사비오리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 현대시 지은이 이한종 (북인, 2010년) 상세보기 바다의 탯줄 - 이한종 내가 섬을 떠나던 날, 남산포에 비가 내렸다 비는 울고 또 울고, 파도가 바위의 등을 만지다 주저앉는다 굴적바위 하나 배에 올랐다 뱃전에도 굴적이 더덕더덕 붙어 있다 배가 남산포를 떠났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맹세도 함께 싣고 떠났다 물결이 굴적 모서리에 베어 너덜너덜하다 배는 찢어진 바다의 시접을 한 땀 한 땀 꿰어갔다 비는 울고 또 울고 또 울고, 그 울음소리 너무 낮아 화통 끝에 그을음뿐, 오늘도 굴적바위는 화농으로 벌어져 바다의 가슴을 긋고 다닌다 오늘도 남산포는 나를 부른다 꿈틀꿈틀 바다의 탯줄을 당기고 있다 , 2001, 북인. #01. 남산포를 떠남 아무렇지 않은 듯한.. 2011. 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