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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관심/시12

[시] 바다의 탯줄 - 이한종 호사비오리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 현대시 지은이 이한종 (북인, 2010년) 상세보기 바다의 탯줄 - 이한종 내가 섬을 떠나던 날, 남산포에 비가 내렸다 비는 울고 또 울고, 파도가 바위의 등을 만지다 주저앉는다 굴적바위 하나 배에 올랐다 뱃전에도 굴적이 더덕더덕 붙어 있다 배가 남산포를 떠났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맹세도 함께 싣고 떠났다 물결이 굴적 모서리에 베어 너덜너덜하다 배는 찢어진 바다의 시접을 한 땀 한 땀 꿰어갔다 비는 울고 또 울고 또 울고, 그 울음소리 너무 낮아 화통 끝에 그을음뿐, 오늘도 굴적바위는 화농으로 벌어져 바다의 가슴을 긋고 다닌다 오늘도 남산포는 나를 부른다 꿈틀꿈틀 바다의 탯줄을 당기고 있다 , 2001, 북인. #01. 남산포를 떠남 아무렇지 않은 듯한.. 2011. 2. 24.
[시] 뼈아픈 후회 - 황지우 어느날나는흐린주점에앉아있을거다(문학과지성시인선220)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 현대시 지은이 황지우 (문학과지성사, 1998년) 상세보기 뼈아픈 후회 -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 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신상이 벌겋게 달.. 2011. 2. 17.
[시] 음악 - 이성복 호랑가시나무의기억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이성복 (문학과지성사펴냄, 2000년) 상세보기 음악 - 이성복 비 오는 날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면 누군가 내 삶을 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아프도록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곳에서 내가 너무 멀리 왔다는 느낌 굳이 내가 살지 않아도 될 삶 누구의 것도 아닌 입술 거기 내 마른 입술을 가만히 포개어본다 , 1993, 문학과지성사 누군가의 삶에 내 삶을 밀착시키고 싶을 때가 있다. 드라마나 영화, 음악 속에 촘촘하게 짜여진 누군가의 이야기같은 인생을 말하는 게 아니다. 엉성하기는 해도 현실에 부대끼며 하나의 인생 이야기를 부지런히 짜 나가고 있을, 어느 누군가의 진짜 삶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과 친하므로, 내 삶 또한 그 .. 2011. 2. 10.
[시] 역전3 - 이성복 그 여름의 끝(문학과지성시인선 86)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이성복 (문학과지성사, 1990년) 상세보기 순수의 본질인 아름다움과 깨끗함, 연약함은 순수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 반면 순수의 본질과 배타적인 것들은 순수의 바깥에서 순수의 본질을 욕망함으로써 순수를 더럽히고 부서뜨리려 한다. 따라서 순수를 지켜내려면 순수를 겨냥한 외부의 폭압을 막아내야 하는데 그 때문에 외부로부터의 폭력을 고스란히 맨몸 그대로 받아내야만 하는 상황과 맞딱뜨리게 된다. 물론 폭력에 대항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외부의 폭력에 대항하게 되면, 그 순간 순수의 가치는 짓이겨지고 무참히 짓밟히게 된다. 왜냐하면, 폭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막아내거나 물리칠 수 있는 또다른 폭력이 반드시 필요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 2009. 5.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