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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관심/시12

[시] 가을 바람 - 맹은지 가을 바람 - 맹은지(現 ebs 국어강사) 바람이다. 날 설레게 만드는 이. 손가락 마디마디 간질이 듯 간질이 듯 머리칼 한올한올 휘감돌 듯 휘감아돌 듯 연갈빛 바람이 부는가 하면 그 바람은 이내 청량한 하늘빛이 된다. 하늘을 닮은 그 빛은 이내 시리도록 내 가슴을 파고든다. 시린 그 빛에 나는 또 한번 벅차오른다. 날 설레게 만드는 이, 파고드는 그 빛은 바람이었다. #01 바람의 이야기 '바람'은 '손가락 마디 마디'와 '머리칼 한 올 한 올'에 감겨들어와 '날 설레게' 한다. '바람'은 무형의 존재. 어디든 '파고든다'. 우리 마음에 꼭 닫아둔 창이 있다면, '바람'은 그 창 틈새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결국엔 우리 마음에까지 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정적인 대기(大氣)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람.. 2011. 7. 11.
[시] 기억의 집 - 이병률 찬란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 현대시 지은이 이병률 (문학과지성사, 2010년) 상세보기 기억의 집 - 이병률 기억을 끌어다 놓았으니 산이 되겠지 바위산이 되겠지 여름과 가을 사이 그 산을 파내어 동굴을 만들고 기둥을 받쳐 깊숙한 움을 만들어 기억에게 중얼중얼 말을 걸다 보면 걸다 보면 시월과 십일월 사이 누구나 여기 들어와 살면 누구나 귀신인 것처럼 아늑하겠지 철새들은 동굴 입구를 지키고 집이 하나로는 영 좁고 모자란 나는 해가 밝으면 동굴을 파고 파고 그러면 기억은 자꾸자꾸 몰려와 따뜻해지겠지 그 집은 실뭉치 같기도 하고 모자 같기도 하며 어쩌면 심장 속 같기도 하여서 겁먹은 채로 손을 푹 하고 찔러 넣으면 보드랍고 따스한 온기가 잡혀와 아찔해진 마음은 곧 남이 되겠다고 남이 되겠다고 돌처럼.. 2011. 5. 26.
[시] 배를 밀며 - 장석남 지금은간신히아무도그립지않을무렵(문학과지성시인선156)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 현대시 지은이 장석남 (문학과지성사, 1995년) 상세보기 배를 밀며 - 장석남 배를 민다 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 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없이 밀려들어오는 배여 , 1995, 문학과 지성사. # 사랑은 밀려들어오는 배.. 2011. 4. 22.
[시] 목포항 - 김선우 내혀가입속에갇혀있길거부한다면(창비시선194)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 현대시 지은이 김선우 (창작과비평사, 2000년) 상세보기 목포항 - 김선우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 막배 떠난 항구의 스산함 때문이 아니라 대기실에 쪼그려앉은 노파의 복숭아 때문에 짓무르고 다친 것들이 안쓰러워 애써 빛깔 좋은 과육을 고르다가 내 몸속의 상처가 덧날 때가 있다 먼 곳을 돌아온 열매여, 보이는 상처만 상처가 아니어서 아직 푸른 생애의 안뜰 이토록 비릿한가 손가락을 더듬어 심장을 찾는다 가끔씩 검불처럼 떨어지는 살비늘 고동소리 들렸던가 사랑했던가 가슴팍에 수십개 바늘을 꽂고도 상처가 상처인 줄 모르는 제웅처럼 피 한 방울 후련하게 흘려보지 못하고 휘적휘적 가고 또 오는 목포항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 열렬.. 2011.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