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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관심/영화

[영화/드라마] 천사의 숨소리(2011)

by 오후 세 시 2011. 6. 8.



천사의 숨소리
감독 한지원 (2011 / 한국)
출연 김영선,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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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천사의 숨소리
감독 : 한지원
출연 : 재민(한지원), 영란(김영선), 지한(전지한), 준열(서준열), 광민(하광민), 정훈(김선국)
개봉 : 2011


#01. 들며.

  내가 전화를 하면 우리 엄마도 영란처럼 “우리 아드을~”이라면서 나를 부른다. 그래서 나는 <천사의 숨소리>를 보면서 몇 번씩이고 울컥울컥했었다. <천사의 숨소리> 시사회장을 나서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엄마가 “아들~”이라고 반갑게 나를 불렀을 때, “엄마!”라고 대답하던 내 목소리는 엄마가 듣기에 많이 떨리고 있었을까. 무엇인가 투명하고 흐릿한 것이 눈동자에 차올랐다. 나는 얼마쯤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며 두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수화기 너머로 엄마가 나를 부르고 있었지만 나는 잠시 동안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몹시도 보고 싶었다.


  영화 <천사의 숨소리>는 스타를 꿈꾸는 철없는 아들 재민과 지병인 천식을 앓으면서도 아들의 꿈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 영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재민의 이야기가 줄기가 되고 거기에 영란의 이야기가 가지를 치고 나와 무성한 잎들을 돋운다. 천을 짜는 과정에 비유하자면, 재민의 이야기는 천을 짜기 위한 베틀의 기본 토대가 되는 날실이고 영란의 이야기는 베를 짜는 과정에서 날실에 한 올 한 올 먹어 들어가는 씨실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민의 이야기에 영란의 이야기가 맞물려 들어가면서 영화는 경쟁 사회에 내몰린 아들과 그런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천사의 숨소리>는 쉴 새 없이 터지는 웃음코드와 눈시울을 자극하는 감동이 영화 전반에 포진되어 있다는 점에서 영화 <헬로우 고스트>와 비슷한 면이 많다. 그러나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크게 다르다. <헬로우 고스트>가 가족 간의 사랑을 주된 정서로 하고 있다면, <천사의 숨소리>는 꿈에 대한 젊은이의 열정과 실패, 그리고 그 젊음의 열정과 실패를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는 어머니의 사랑을 중요한 모티브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02. 재민의 이야기 - 우리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

  재민은 스타를 꿈꾼다. 그러나 스타를 꿈꾸는 이들은 많고, 스타가 될 수 있는 숫자는 한정되어 있다. 이것이 이른바, 수요는 적은데 공급이 과다해지는 현상인데, 이렇게 되면 공급되는 것들의 가치는 하락하게 마련이다. 재민이 처한 현실, 즉 스타가 되기 위한 오디션에 과다한 인력이 공급됨으로써 스타지망생들의 가치가 하락하는 현실은 비단 그쪽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가 직면해 있고, 사회 진출을 바라는 많은 젊은이들이 몸소 부딪치고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한지원 감독은 스타 오디션이라는 다소 유행에 민감한 소재를 영화의 주 소재로 들고 나왔지만, 그 의중에는 한국 사회의 모든 젊은이들이 맞닥뜨린 사회진출 문제를 염두에 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지원 감독은 이 문제를 깊게 파고들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이미 <천사의 숨소리>의 공식 사이트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문제를 속속 들춰내어 이면에 감춰진 그림자를 파헤치는 것은 불필요한 의무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허나 너무 깊숙한 이야기는 10고 끝에 지웠다고 한다. 그것은 이 영화를 통해 진짜 이야기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기 위해서인데, 목적을 벗어나는 이야기를 무슨 의무감과 정의감에 불타서 괜히 할 필요가 있나? 라는 자문 때문이었다고 한다. 무슨 시사프로그램인 마냥 현실을 비판하고 배타적인 성격만을 가득 가지고 현실을 비판하는... 속속들이 연예계 뒷담화를 파헤쳐야 한다는 불필요한 의무감을, 이 영화는 아주 가볍게 날려 보낸다.

- ‘천사의 숨소리 - 성분분석’ 중 일부, 출처 : <천사의 숨소리> 공식 사이트

  <천사의 숨소리> 공식 사이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영화 <천사의 숨소리>가 시사프로그램의 성격을 표방한 다큐멘터리필름이 아니므로, 굳이 어두운 현실을 낱낱이 해부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한지원 감독이 영화를 통해 이런 악다구니 같은 현실(물론 그 현실을 위트 있게 풀어내고 있지만)을 보여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지원 감독이 말하려는 바는 간명하다. 어떤 광고의 카피처럼, ‘진심은 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니까 좌절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편, 단순한 위로만으로는 답이 될 수 없는 현실 속의 젊은이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진심을 다하면 된다’라고만 말하는 건, 현실의 냉혹함을 고려치 않은 채 너무나 가볍게 현실 문제를 치부해 버리는 것이 아니냐, 라고 되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뿌리까지 썩어 들어가고 있는 청년 실업 문제를 뿌리 채 파낼 여력이 안 되는데, 언제까지 고개만 맞대고 모여앉아 개탄만 할 것인가.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힘내라’고 말하는 것이 골방에 들어앉아 욕지거리를 해대는 것보다야 발전적일 수 있지 않을까? 한지원 감독은 막 취업의 문턱에 발을 내딛을 다른 젊은이들과 비슷한 나이에 있다. 그런 점을 떠올려 보면, <천사의 숨소리>는 한 젊은 감독이 경쟁 사회에 내몰린 동년배의 젊은이들에게, ‘우리들의 진심은 언젠가 통할 것이다’라고 건네는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임이 틀림없다. 한지원 감독의 이야기를 직접 인용해본다.

Q.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봐주길 원하는가? A. 흑과 백을 둘러싼 무지개 같은 삶과 죽음 사이에 놓여있는 우리라는 존재. 언제나 최고를 원하고 1등이 아니면 루저라 말하는 세상이 매정하다고 생각한다. 난 삶이 축제라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지금의 축제를 더 많이 누리길 바란다. 세상은 아무런 수식어를 붙여 TV에 나오지 않으면 무명배우, 상업영화 아니면 독립영화, 매이저가 아니면 인디라 말한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통칭되지만 우리는 각자의 포지션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축제의 한 일원이길 바란다. 영화를 보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즐거움을 누렸으면 한다. 너무 추상적인 대답인가?

- ‘천사의 숨소리’ 한지원 감독 인터뷰 중 일부, 출처 : <천사의 숨소리> 공식 사이트

  한지원 감독의 인터뷰 이야기를 보고 메시지 하나를 더 덧붙이자면 ‘주어진 삶을 즐기자’라고 할 수 있겠다. 재민의 이야기가 젊은층들을 향해 던지는 공감과 위로, 그리고 즐김의 메시지라면, 영란의 이야기는 과연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을까? 지금부터는 영란의 이야기가 영화 속에서 어떻게 발화하여 빛을 내뿜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03. 재민의 가장 가까운 타인, 영란의 이야기 

  극중에서 재민이가 잘 나가는 기획사 실장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며 제발 도와달라고 말할 때, 기획사 실장이 재민에게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아오라’고 과제를 내준다. 그 과제만 풀어온다면, 재민을 믿고 단역부터 시작해 조금씩 밀어주겠다는 약속까지 한다.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언제나 멀리 있는 타인의 마음, 그 마음을 이해하라니, 어지간히 어려운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재민은 이 과제를 풀기 위해 노숙자가 되어 보기도 하고 수많은 타인들을 관찰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건 단순히 타인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타인을 관찰하는 게 아니라 타인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이해해야 하는 것이니, 그 어려움이야 말로 해 무엇하랴.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이 되어 타인의 삶에 몰입해 보는 것일 게다. 하지만 말이야 쉽지, 이게 어디 쉬운 일인가. 

  재민은 오랜 시간동안 그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실은 가장 가까운 곳에 그 해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민은 자신과는 먼 타인의 마음만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천식을 앓으면서도 궂은 식당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영란이 어리숙하고 재능 없는 아들 재민을 밑끝없이 믿고 뒷바라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재민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 재민의 삶에 몰입하는 엄마 영란의 ‘아들의 마음 이해하기’는 처연함을 뛰어넘어 숭고할 정도이다. 아들의 오디션 레퍼토리를 따라하고, 아들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조르고, 아들이 연기선생님에게 지도받을 수 있도록 재민 모르게 뒷돈까지 대주는 모습은, 영란이 ‘아들 재민의 꿈이 얼마나 열정적인가’를 이해하고 있다는 근거가 된다. 재민은 엄마 영란의 ‘아들의 마음 이해하기’를 아주 나중에서야 깨닫게 된다. 엄마 영란에 비하면 재민은 자신의 가장 가까운 타인이었던 엄마의 마음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 ‘2. 재민의 가장 가까운 타인, 영란의 이야기’에서 할 이야기가 조금 남아있는데, 스포일러 때문에 뒷부분은 극장 개봉 후에 마저 올린다.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04. 나며.

  영화 <천사의 숨소리>는 처음 말했던 것처럼 재민의 이야기가 날줄이 되고 영란의 이야기가 씨줄이 된다. 날줄인 재민의 이야기는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이야기한다. ‘좌절하지 말고 진심을 다해 즐겨라(혹은 감독이 젊은이들과 동년배라는 점에서, 좌절하지 말고 진심을 다해 즐기자)’라고. 그리고 씨줄인 영란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리 앞에 주어진 삶을 축제처럼 즐기되, 삶을 즐길 수 있도록 나를 지탱해주고 있는 우리 어머니(혹은 우리 아버지나 우리의 가족들)의 사랑과 헌신 또한 잊지 말자’고. 이런 날줄과 씨줄을 엮어 한지원 감독은 따뜻한 옷감을 한 벌 만들었다. 냉소적인 현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따뜻한 영화가 될 것 같다.

  오랜만에 따뜻하게 울었다. 시사회장에 혼자 갔기 때문에 눈치 안보고 울었다. 유명한 배우가 등장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유명하지 않은 배우들만 나와도 가슴 따뜻한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은, 한지원 감독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든 개입되어있지 않든, 취업 시장에서 절규하고 있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것이다.


  잠시 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나는 가까스로 감정을 추스린 뒤 수화기 너머로 귀를 기울였다. 엄마가 연신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응, 엄마", "아들, 무슨 일 있어?", "아니, 그냥 엄마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지.", "밥이랑 잘 챙겨먹고 다니지? 배 곯지 말고, 고기도 좀 사 먹고 그래.", "어, 엄마. 아들이 다른 건 몰라도 밥은 잘 챙겨먹잖아. 걱정하지 마.", "그래, 아들 목소리 들으니까 엄마도 기분 좋다." 길어진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어릴적 저녁 무렵이면 언제나 나를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 그 목소리를 기억한다. 아직도 엄마에게 난 '물가에 내놓은 애'다. 난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가 들어가는 엄마의 커다란 버팀목이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 '물가에 내놓은 우리 엄마의 애'이고 싶다.



#05. 추신

+ 제목에 관한 짧은 생각 
  제목도 하나의 홍보 수단이다. 영화 제목이 입에 얼마나 착착 달라붙느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호감도가 달라진다. 한지원 감독이 자신의 블로그에서 지인들의 말을 빌려 언급한 것처럼 최근의 제목 글자의 숫자는 세 글자가 대세다. 세 글자가 아니라면 홀수 제목으로 하는 것이 좋다. 그게 입 안에서도 리듬감 있게 딱딱 떨어진다. 그런데 <천사의 숨소리>는 세 글자도 아닐뿐더러 홀수도 아니다. 게다가 나는 솔직히 친구와 이 영화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천사의 숨소리’라는 제목 자체가 너무 세련되지 못하고 투박하기까지 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에 한지원 감독이 왜 이 제목을 끝까지 고수했는지 이해가 됐다. 제목이 여전히 투박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지만, 이제 나는 그 제목을 보면 어떤 진정성과 감동을 느낀다. 부디 제목 때문에 좋은 영화를 놓치는 관객들이 많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만 가져본다.

+ 잡담
  트위터에서 한지원 감독님과 처음 만났다. 영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영화라는 매체에 괜히 관심이 많았는데, 트위터에서 만난 영화 감독 한지원은 참 경이롭게 느껴졌다. 곧 장편 영화를 개봉한다고 하니, 뭔가 저 멀리에 있을 것만 같은 느낌도 들었다. 시사회 전에 감독님께서 신경써서 멘션을 날려주셔서, 얼굴에 철판 깔고 시사회장으로 갔다. 거기서 만난 감독님의 인상은 뭐랄까, 많이 순수해 보이고 착해 보였다. 시사회장 가기 전날까지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굉장히 고민했었다. 많이 바쁠텐데 거기 얼굴 들이밀고 "저... 트위터에서..."라고 말하는 게 너무너무너무 낯뜨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은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좋은 영화를 보여주신 감독님께 다시 한 번 이 포스트를 빌려 감사의 말을 올린다. 감독님 감사합니다. ㅋㅋ 트위터에서 종종 봬요.

+ 잡담 투
  6월 11일 토요일 인디플러스 시사회 (헌데 응모 마감인 듯하다)
  6월 16일 목요일 전주 디지털독립영화관 정기상영회
  6월 28일 화요일 광주 (아마도 예정)
  영화 <천사의 숨소리> 공식 사이트
  영화 <천사의 숨소리> 미투데이
  한지원 감독님 트위터 :  http://twitter.com/ratel20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