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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관심/영화

[영화/판타지] 써커펀치(Sucker Punch, 2011)

by 오후 세 시 2011. 4. 11.


써커 펀치
감독 잭 스나이더 (2011 / 미국)
출연 에밀리 브라우닝,애비 코니쉬,지나 말론,바네사 허진스,제이미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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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써커펀치(Sucker Punch)
장르 : 액션, 판타지
감독 : 잭 스나이더
출연 : 에밀리 브라우닝(베이비 돌 역), 애비 코니쉬(스위트 피 역), 지나 말론(로켓 역), 바네사 허진스(블론디 역),
         제이미 정(앰버 역)
개봉 : 2011-04-07
러닝타임 : 110분



#01 내러티브의 원형과 모방

  영화 <써커펀치>가 논란인 것 중 하나는 비디오 게임이 영화화되었다는 점이다. 어떤 영화 칼럼니스트는 이에 대해 "영화와 같은 내러티브 예술이 비디오 게임을 원작으로 삼거나 모델로 삼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영화의 내러티브를 모방하는 비디오 게임의 내러티브를 다시 한 번 모방하"는 영화는 "최악의 각본을 따르는 영화"라고 했다. 여기에 전제되어 있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비디오 게임은 영화의 내러티브를 모방한다. 둘째, 따라서 비디오 게임의 내러티브 수준은 영화의 내러티브 수준에 못 미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헌데 이런 식의 논리는 무한퇴행의 늪에 빠지게 된다. 가깝게 이야기해서 영화의 내러티브는 어디에서 모방된 것인지를 따져보자. 아마도 연극으로 거슬로 올라가야 할 것이다. 그럼 연극의 내러티브는 어디서 모방되었을까? 서사시일 것이다. 그렇다면 서사시의 내러티브는? 이렇게 자꾸만 논의가 퇴행되어 간다면, 내러티브를 기반으로 해서 만든 인간의 모든 창조물은 태초에 존재해 있던 내러티브의 모방물이 되고 말 것이다. 더군다나 이 무한퇴행의 늪은 태초의 내러티브의 기원이 무엇이냐고 묻는 데까지 나아가게 된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이다. 하지만 극단으로 이끄는 기본 전제가 무엇이었던가. 모방과 원형, 그리고 그 수준을 문제삼는 발언 아니었던가.

  시대가 달라졌다. 원형과 모방의 경계는, 무너진지 오래다. 심지어 모방이 원형을 능가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비디오 게임의 내러티브가 영화의 내러티브를 모방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제 게임은 영화에서 따온 내러티브로 영화의 내러티브와는 차별되면서 게임만이 독자적으로 지닐 수 있는 내러티브를 만들어냈다. 요컨대, 게임은 게임이고, 영화는 영화다. 영화에는 영화의 내러티브라는 것이 있고, 게임에는 게임만의 내러티브라는 게 있다. 그것은 모방과 원형을 떠나 게임과 영화가 각각 독자적인 장르를 꿰찼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게임이 영화의 내러티브를 차용하는 것이 문제될 것 없고, 영화가 게임의 내러티브를 모방하는 것도 문제될 것 없다.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베껴서 더 확장된 장르로 나아가는 시기 아닌가.

  영화 <써커펀치>는 게임의 내러티브를 모방했다. 맞는 말씀이다. 그러나 영화 써커펀치는 영화의 내러티브를 모방한 게임의 내러티브를 다시 모방했다, 라고 말해선 안된다. 된다고 말하신다면, 나는 다시 논의를 무한소급시킬 수밖에 없다.





#02 빈약한 내러티브

  영화 <써커펀치>의 내러티브가 빈약하다는 말이 많다. 인정한다. 그러나 <서커펀치>에 내러티브가 부재한다고 보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죽은 어머니의 유산을 물려받게 된 딸이 계부의 계략에 넘어가 계부의 뒷돈을 받은 정신병원에 감금되어 있다가 동료들과 정신병원을 탈출하는 내용이 <써커펀치>의 주된 줄거리이다. 내러티브가 있다. 다소 빈약할 뿐이다. 베니싱에 비하면 훌륭할 지경이다.

  성인클럽으로 묘사되는 1차 환상과 전투씬으로 표현되는 2차 환상이 서사의 맥을 끊는다고 하는데, 이건 문제될 게 없는 게, 후반부에서 다시 맥락을 이어준다. 1차 환상과 2차 환상을 두고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한다면 어쩔 수 없다. 판타지에서 레알을? 반지의 제왕, 캐리비안의 해적, 해리포터는 어쩔?

  주인공인 베이비 돌은 그렇다치고 나머지 애들은 진짜 정신병자 아니냐는 말에는, 뒷돈 받는 정신병원에서 평범한 애들 가둬두는 게 뭐 대수겠냐고 받아치겠다.

  고상하고 심각한 내러티브를 원한 관객들이라면, 영화 선택을 잘못한 거다. 판타지 액션이라는 장르 영화와 고상하고 심각한 내러티브는 물론 잘만 버무리면 어울릴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그러다 보면 장르성이 다소 죽지 않았을까.

  2차 환상 속에서의 할아버지가 현실에서 버스운전수로 나온다는 설정을 보고 "말도 안되다!!"고 말할 수는 있다. 여기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나는 그 할아버지가 어느 순간 조력자로 등장할 것이라 예상하긴 했는데 버스 운전수로 나와 스위트 피를 도와줄 줄은 몰랐다. 그냥 감독의 서비스라고 생각하려 한다. 뭐 이런 건 내러티브의 빈약함이라 할 만하다. 귀여운 데우스엑스마키나의 개입이랄까.





#03 짬뽕된 오타쿠(お宅) 문화? No! 오타쿠 문화의 종합선물세트!

  영화 <써커펀치>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단어들 중 하나가 오타쿠라는 말이었다. 이 말도 맞다. 근데 문제는 이 "오타쿠"라는 단어를 굉장히 비아냥거리며 사용한다는 점이다. 오타쿠는 넓게는 한 분야에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사람이란 뜻이고, 좁게는 게임과 애니메이션에 깊이 빠져 있는 사람들을 일컬을 때 사용한다. 그런데도 오타쿠란 단어를 비아냥거리며 사용할 필요가 있나 싶다. 요즘 세대들은 게임과 애니메이션, 인터넷에 광적으로 빠져있다. 이 오타쿠 문화가 지금 세대들이 형성한 서브컬처이다. 지난 세대가 비디오와 포르노, 만화책, 하이틴 소설에 집착하던 것과 다르지 않다. 세대를 거치면서 문화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이행한다. 그런 문화의 이행을 이해해야 <써커펀치>를 제대로 볼 수 있다.

  <써커펀치>를 보면 RPG, FPS 등의 게임 요소가 폭발적으로 등장한다. 거기다 세라복 소녀들과 로봇, 미래형 복제 안드로이드 같은 애니메이션 요소도 대거 투입되어 있다. 그뿐인가. 드래곤과 오크는 중세 RPG의 단골 소재들이다. 요즘 세대들이 환장할 만한 코드들이 속속 포진해 있다. 짬뽕된 오타쿠 문화? 아니다. 이건 오타쿠 문화의 종합선물세트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스고이하고 카와이하다.

 


+ 영화를 보고 나와 재밌었다고 미친듯이 좋아하는데, 내 친구가 하는 말, "니가 오덕이긴 오덕이구나." 내가 오덕이긴 오덕인가 보다. 근데 씹덕 수준은 아니다.

+ 혹평이 대단하더라. 이 정도인 줄 몰랐다. 근데 평론가들의 혹평에 비해 관객들의 평은 그렇게 혹독하진 않은 듯하다.

+ 다섯 개의 아이템은 나도 좀 오글거리긴 했다. 됐어, 뭐, 재밌었으면 됐지. 오감이(가 아니고 눈과 귀가) 즐거웠는 걸.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