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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관심/영화

[영화/멜로] 봄날은 간다 (One Fine Spring Day, 2001)

by 오후 세 시 2008. 6. 13.

봄날은 간다
감독 허진호 (2001 / 한국)
출연 유지태, 이영애, 박인환, 신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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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와 은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사랑 이야기

제목 : 봄날은 간다(One Fine Spring Day, 2001)
감독 : 허진호
출연 : 유지태(이상우), 이영애(한은수)
기타 : 2001-09-28 개봉 / 106분 / 12세 관람가



1. 만남, 그 설렘

  새로운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일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깊은 밤 산사에서 바람에 울려 퍼지는 풍경 소리처럼, 고요하고 아득하게 내려와 쌓이는 눈 소리처럼, 상우와 은수에게도 만남은 설레게 다가온다.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에 빠지면, 사랑 외에는 아무 것도 없을 것만 같다. 그 사람이 하는 모든 것들은 나를 가슴 뛰게 한다. 조금이라도 떨어져 있으면 그 보고픔은 참을 수 없이 부풀어 오른다. "라면 먹고 갈래요?", "자고 갈래요?"라는 은수의 말과 그 말에 순순히 응하는 상우의 행동에서 상우와 은수는 사랑이 시작될 것 같은 설렘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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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랑, 헤어날 수 없는……

  그렇게 사랑은 시작된다. 상우가 늘 곁에 있어도 그의 가슴 가득 안기고 싶은 은수와 멀리 있으면 언제라도 은수에게 달려가고 싶은 상우는 사소한 몸짓, 말투, 행동에서도 서로를 향한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그러기에 두 사람은 더 세게 서로를 껴안고 서로에게 입맞춘다. 사랑은 모든 것을 아름답게 비춘다. 두 사람은 서로와 함께일 수 있다면 무조건 행복할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기에 두 사람은 그 사랑에서 헤어날 수 없다.


3. 예감, 지루하고 싫증나는 사랑에 대한……

  미국의 인간행동연구에 따르면, 과학적으로 인간의 생리적인 조건만을 따진다면 사랑은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고 한다. 즉, 사랑의 생리적 유효기간은 6개월에 불과한 것이다. 사랑이 6개월 이상을 넘길 수 있는 까닭은 설렘이나 흥분과 같은 생리적 정서에 인간의 사유와 의지가 결합되기 대문이다. 그 사유와 의지가 어떻게 결합되고 어떻게 유지되느냐에 따라 사랑은 생리적 유효기간을 넘어서 의지적 유효기간을 설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은수와 상우는 조금씩 서로에게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생리적인 유효기간이 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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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은수의 앞에 다른 남자가 나타난다. 상우와는 또 다른 새로운 남자. 은수는 힘들어지는 것을 느낀다. 자신은 상우를 사랑한다고 믿지만 그 새로운 사람에게도 자꾸만 마음이 가기 때문에. 그래서 은수는 술을 마시고 들어와 상우를 힘껏 껴안아 보고 입 맞춰 본다. 하지만 이미 상우에 대한 마음이 다했음을 알게 된다. 그가 다정하게 건네는 말들 때문에 술에 취한 은수는 미안해지고 슬퍼지기만 할 뿐이다.

  상우는 은수의 미묘한 변화에 둔감하다. 무엇인가 변한 것 같지만 어김없이 자신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는 은수를 바라보며 상우는 곧 안심한다. 하지만 전과 달리 짜증 섞인 은수의 말투에서 상우는 어쩌면 은수가 자신에게 지쳐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어떤 말이든 꺼내놓기라도 하면 곧장 이 사랑이 부서지고 깨어져버릴 것만 같은 예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상우는 그런 불안함에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만 한다.

  불안함에서 비롯된 은수에 대한 상우의 친절, 그러나 은수는 그 친절이 이제 부담스럽다. 두 사람 모두 이제는 헤어짐을 예감한다. 그러나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사랑이 다한 것일 뿐, 다만 그 뿐이다.


4. 헤어짐, 너무 달라서 돌이킬 수 없는……

  은수는 상우의 짐을 챙겨 자신의 집 거실 위에 정돈해 둔다. 상우는 은수가 챙겨놓은 짐들을 보고 잠들어 있는 은수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짐들을 챙겨가지고 나온다. 그리고 상우와 은수는 그렇게 헤어진다. 그러나 두 사람이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너무나도 다르다.

  헤어짐에 상처받고, 힘들어 하는 상우. 그에게 헤어짐은 혼자 이겨내야 할 아픔이다. 친구에게 한다는 말도 고작 "그 사람이 보고 싶다"는 말 뿐. 하지만 상우는 그 말마저도 이미 부질없는 것임을 알고 있다. 헤어짐을 다른 사랑으로 극복하는 은수. 은수에게 헤어짐은 가슴 속에 움켜쥐고 가야 할 아픔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헤어짐을 아픔으로 간직하면 간질할 수록 힘들어지기만 할 것이란 걸 은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헤어짐을 받아들이는 두 사람의 방법은 너무나 다르다. 그래서 이제는 그 헤어짐을 돌이킬 수도 없다. 상우는 자꾸만 상처받고, 은수는 그런 상우에게 미안해지기만 할 뿐이다. 다시 만났을 때, 은수가 "우리 같이 있을까?"라고 한 말에 대해 상우는 또 다시 상처받는다. 그래서 상우는 자신의 팔에 팔짱을 끼고 있는 은수의 손을 떨쳐낸다. 다른 사람의 팔에도 분명 은수는 아무 거리낌 없이 팔짱을 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이 보여준 행동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은수를 느끼며 상우는 되돌아가고 싶어도 되돌아갈 수 없는 슬픔으로 발길을 떼지 못한 채 멀어져 가는 은수를 자꾸만 뒤돌아 본다. 상우에게는 은수가 마지막으로 내민 손길의 온기가 아직 남아있는 듯하다.

 은수는 상우가 자신에게 그러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조금 더 자신에게 마음을 열어줬으면 하는데 상우에게는 그것이 힘든 것인가 보다, 라고 여길 뿐이다. 그래서 은수는 상우에게 작별의 손길을 내민다. 은수는 그것이 상우에게 덜 상처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대한 상우를 돌아보지 않고 자신이 갈 길을 가는 것이 상우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꾸만 뒤돌아 보게 된다. 뒤돌아 보았을 때, 상우와 눈이 마주치지만 상우를 위해 다시 고개를 돌린다. 은수에게도 그것은 힘든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헤어짐을 받아들이고야 만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헤어짐의 상처를 딛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상우도 그걸 알기에 희미하게 미소지었을 것이다.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졌지만, 찾아왔던 봄날은 그렇게 갔지만, 그들에겐 또 다른 아름다운 앞날이 기다리고 있다.


5. 상우와 은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사랑이야기

  2001년에 개봉했던 영화를 이제서야 봤다. 은수의 빨간 목도리는 2001년 겨울에 무척이나 유행이었다. 오래 전 내가 사랑하던 사람은 나와 한바탕 싸우고 나면 꼭 라면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그땐 그게 정말 사랑스럽게 느껴졌는데, 그 사람이 아마도 <봄날은 간다>를 보고 그랬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봄날은 간다>가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이 영화보다 사랑을 잘 표현한 영화가 있을까. 오직 이 사랑만이 진짜 사랑인 듯 여겨지기도 한다. 상우와 은수가 나누던 수많은 대화들, 그 둘이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 그건 비단 상우와 은수만이 나누고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랑을 했던, 그리고 사랑을 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나누고 느끼던 것들이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봄날은 간다>는 상우와 은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사랑이야기이다. 사랑이야기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이 멋진 영화가.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