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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관심/시

[시] 목포항 - 김선우

by 오후 세 시 2011. 4. 12.
내혀가입속에갇혀있길거부한다면(창비시선194)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 현대시
지은이 김선우 (창작과비평사,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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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항 - 김선우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
막배 떠난 항구의 스산함 때문이 아니라
대기실에 쪼그려앉은 노파의 복숭아 때문에

짓무르고 다친 것들이 안쓰러워
애써 빛깔 좋은 과육을 고르다가
내 몸속의 상처가 덧날 때가 있다

먼 곳을 돌아온 열매여,
보이는 상처만 상처가 아니어서
아직 푸른 생애의 안뜰 이토록 비릿한가

손가락을 더듬어 심장을 찾는다
가끔씩 검불처럼 떨어지는 살비늘
고동소리 들렸던가 사랑했던가
가슴팍에 수십개 바늘을 꽂고도
상처가 상처인 줄 모르는 제웅처럼
피 한 방울 후련하게 흘려보지 못하고
휘적휘적 가고 또 오는 목포항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
열렬히 사랑하다 버림받게 되기를

떠나간 막배가 내 몸속으로 들어온다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2000, 창작과 비평사.





#01. 끝난 후에 오는 상처

  '돌아가야 할 때가 있다' 잔치가 끝나면, 최영미 시인의 말마따나 모든 걸 알고 있다고 해도(시인은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말했지만, 그것이 반어라는 걸 안다면, 모든 걸 알고 있으므로 상관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된다) 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끝난 잔치의 풍경은 '막배 떠난 항구'처럼 '스산'하다. 그러나 돌아가야만 하는 건 그 스산함 때문이 아니다. 모든 것이 끝난 후에 오는 상처들을 위무하기 위해서다.


#02. 그 상처를 위무한다
  우리는 '짓무르고 다친' 기억들이 많으면서도 상처를 위무하는 과정에서 '빛깔 좋은 과육을 고르'듯 좋은 기억들로만 상처를 보듬는다. 허나 그로 인해 더 상처받기도 한다. 긍정의 이면에는 늘 그렇게 치열한 속앓이가 있는 법이다. "좋은 추억들로 기억될 거다", "아무렇지 않다", "괜찮다"고 말하는 말 속에 아픔이 배어나오는 건 그 때문이다.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상처만 상처가 아니'란 거다. 청춘은 아직 한창 때이기에 아파도 '피 한 방울 흘려보지 못하고' 가슴 속에 아픔들을 우겨넣는다. 그래서 '푸른 생애의 안뜰'은 그토록이나 피냄새로 '비릿'하다.


#03. 그 후에 오는 것
  '비릿한' 상처를 위무하다 보면 '떠나간 막배가 내 몸속으로 들어'오듯 지나간 시간들과 대면하게 된다. 지난 시간은 그렇게 기억되는 법이다. 떠난 배가 다시 되돌아오듯. 그 때 바라보는 지난 과거는 과거일 때보다 더 객관적으로 보인다. 일인칭에 얽매여 있던 과거의 시선이 현재에 와서는 삼인칭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상처가 아문다. 좋은 추억들로 기억되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괜찮은 것처럼 나를 위장하지 않아도, 추억들은 아무렇지 않게 제법 괜찮은 것으로 기억된다.


#04.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라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사랑하지 못해 아프기보다'는 '버림받게 되'더라도 '열렬히 사랑하'는 게 낫다. 썩은 냄새가 나는 게 아니라 '비릿'한 냄새가 난다는 건 아직 생생하단 증거다. 그러니 스스로 목숨을 끊지 말고 바닥에 내팽겨쳐져 상처가 나더라도 생생하게 살아 사랑하라.


#05. 항구
  그러다 보면, 언젠가 다시 자신만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가 올 것이다. 그땐 다시 자신만의 자리로 돌아와 상처를 위무하면 된다. 그럼 아팠던 지난 과거와 다시 대면하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상처가 아물었다면, 다시 떠나자. 가고 오고 정박했다 떠나는 것, 그것이 본래 항구의 속성 아니던가. 우리 사랑도 다르지 않다. 아물일 상처가 있다면 돌아가자. 그리고 떠날 준비가 됐다면 다시 떠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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