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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화] 소라닌 - 아사노 이니오

by 오후 세 시 2009. 5. 4.
소라닌 1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ASANO INIO (북박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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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닌 2
카테고리 만화
지은이 ASANO INIO (북박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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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 A

#01. 청춘의 독

  『소라닌』은 대학교 때 경음악 서클에서 만나 서로 친해진 메이코와 다네다, 가토와 아이, 그리고 빌리(지로), 이 다섯 청춘들이 이상(꿈)과 현실, 그리고 그 사이의 괴리감으로부터 겪게 되는 절망과 희망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십대 후반에 접어든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희망이라고는 한 달에 두 번 스튜디오에 모여 밴드 연습을 하는 것 뿐. 그들은 서른을 향해 줄달음질치고 있는 삶 속에서, '나도 이 사회의 무엇인가가 되어야지'라는 의무적인 생각을 무거운 짐처럼 짊어지고 가고 있다. 헌데 그렇게 앞으로 닥쳐올 치열한 사회 속에서 무엇인가가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하면서도, 젊었을 적의 순수한 꿈들을 쉬이 놓아 주질 못한다. '앨범을 낼 수만 있다면', '무대 위에서 음악과 함께 남은 청춘을 불사를 수만 있다면', 이라는, 헛된 꿈들을 그들은 여전히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 누군가는 만년 대학생으로, 누군가는 쥐꼬리 만한 월급쟁이로, 누군가는 원치 않는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원치 않는 하루하루를 살아 나가면서도 그들은, 자꾸만 현실과는 먼 꿈을 꾼다. 각자의 앞에 놓인 현실이 궁벽하기만 한데도, 자신들의 음악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부질없는 꿈은, 자꾸만 그들을 한 달에 두 번 스튜디오에 모이게 한다. 소라닌. 이 말은 '청춘이 시작될 무렵의 오기처럼 솟아나는 젊음의 독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생업을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도 모자랄 판에 음악에 희망을 걸고 있는 이들 다섯 청춘들. 누군가는 이들에게 철이 덜 들어 그런 것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렇다. 슬프게도, 이십대 후반의 이들에겐 아직까지도 여리고 철없는 청춘의 독이 남아있다. 그런데 이 청춘의 독. 정말 아름답지만, 또 참 슬프고 치명적이다.


#02. 다음은 없어

  '내가 왜 이따위 일을 하고 앉아있는 걸까? 내가 정말로 하고 싶었던 건 이게 아닌데.' 이들 모두는 고민한다. 사회에 뛰어들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정신없이 살아가면서도 이 고민은 그들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을까?', '난 지금 어쩔 수없이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싶은 것 못 하면서 사는 이따위 인생은 너무 각박한 것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이들 다섯 청춘들. 그들은 철이 덜 든 것일까, 아니면 아직까지 순수하기만 한 것일까.

  모두가 가진 고민에 대한 답을 가장 먼저 낸 것은 메이코였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과감하게 때려치워 버린 것이다. 어쩌면 그건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조금 더 그 고민에 본질적으로 다가가기 위한 결단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얻은 것은 어색한 자유였다. 어색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애쓰는 그녀에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푼돈도 안되는 일러스트 일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으면서도 음악만은 죽어도 못 놓겠다고 투정 부리는 그녀의 연인 다네다였다. 그래서 메이코는 어느날 다네다에게 말한다. "그럼 하면 되잖아. 그러니까 밴드해." 라고. 다네다의 입장에서는 참 대책없는 말로 들렸을는지 모르겠지만 메이코는 아마도 다네다가 끌어안고 있는 고민에 대해 좀 더 본질적으로 다가서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것이었으리라.

다네다 밴드해
하하하.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
……
왜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그래?
오늘은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 마.
…… 내 재능은 평범해. 죽어라 음악만 하고 있는 사람들 발끝에도 못 따라간다고.
…… 재능이 없으니까~ 실력이 안 되니까~ 언제까지 넌 그런 식으로 도망만 칠거니? 넌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듣기가 두려운 거야!! 그것도 네가 그토록 좋아하는 음악으로!! 하지만 박수를 받든 야유를 받든 평가를 받아야 비로소 그 가치가 있는 거잖아.
……
그렇게 했는데도 정말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땐 그때 가서……
…… 그때 네가 해 줄 수 있는 게 뭔데? 나랑 같이 죽어주기라도 할 거야?
……
…… 미안해. 농담이야. 잠깐 산책 좀 다녀올게.

  서로 생채기를 내며 메이코와 대화를 나눈 뒤, 다네다는 오랜 고민 끝에 하던 일을 과감히 접는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나에게 다음은 없다'는 생각으로. 열병처럼, 이번만 앓고 나면 괜찮아 질 거라는, 그런 생각으로. 그리고 데모 시디를 만들기 위해 그들은 스튜디오로 모인다. 마지막이 될 지 모를 그들의 밴드 연주. 연주에 몰입하는 그들의 얼굴엔 이렇게 쓰여있다. '지금이 아니면 안돼. 다음은 없어.'


#03 충돌

  데모 시디를 녹음해 레코드 회사에 보낸 며칠 뒤, 그들에게 연락이 온다. 그러나 레코드 회사는 그들에게 가수로 데뷔 예정인 그라비아 아이돌의 백밴드를 제안한다. 다네다 일행은 잠시 고민하지만 그 제안을 딱 잘라 거절한다. 그건 그들이 지닌 순수한 꿈을 더럽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이제 후회 따윈 없다는 듯이 레코드 회사를 나와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네다는 메이코에게 헤어짐을 통보한다. 헛된 꿈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메이코에게 미안해 다네다는 헤어짐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메이코는 헤어짐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자신 때문에 다네다가 순수한 꿈을 버리려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정쩡한 싸움 끝에 다네다는 메이코에게 산책을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선다. 그리고 잠시, 그러면서도 조금은 오래 두 사람은 연락을 끊은 채 살아간다.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은 다네다에겐 메이코를 위해 자신이 지닌 꿈을 버릴 시간이 필요했다. 방 안에 남겨진 다네다의 옷과 기타들을 바라보며 다네다의 연락을 기다리는 메이코에겐 다네다의 순수한 꿈을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마음의 정리가 모두 끝났다고 생각한 다네다는 메이코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 집으로 돌아가겠노라고 이야기한다. 메이코에게 돌아가기 위해 스쿠터에 올라타는 다네다는 이렇게 생각한다. 뭐든 다 해 보았으니까. 그리고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 그리고 메이코가 있으니까. 나는 행복해. 스쿠터를 타고 큰 길로 나오자 다네다의 마음이 이렇게 묻는다. '정말?' 다네다는 자신의 마음에게 대답한다. '정말이야.' 그러자 마음이 또 다시 묻는다. '정말?' 다네다는 이제 대답하지 못한다. 그리고 다네다의 눈에 눈물이 고이다가 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충돌.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릿해서였을까? 아니면, 어떤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다네다는 스쿠터를 탄 채 승용차와 부딪혀 하늘을 부웅 난다. 그리곤 다시,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없어 스스로 날개를 꺾고 추락하는 새마냥 지면과 거세게 부딪힌다.


#04. 가자, 어서 집으로……

메이코 너 정말로 회사원 되는 거야?
그게 무슨…?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당연하잖아. 내일이면 이사할 집도 정해질 거고.
… 그런데 말이야. 넌 지금 전혀 관심 없는 직종에 취직하려고 하고 있잖아. 메이코. 넌 차나 나르고 고객관리를 하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니라고. 아무리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시대라지만… 왜 그렇게 조급해 하는 지 도무지 난 이해가…
바~ 보!! 이제 와서 왜 그런 소릴 하는 건데!? 남자친구라면 '힘내'라고 용기를 줘야 하는 거 아냐!? … 네 생각을 나한테 강요하진 마. … 오늘은 그만 집에 갈래.


  1년 하고도 반 년 전의 기억이 다네다에게 찾아든다. 다네다는 직장 생활을 시작하는 메이코에게 왜 그렇게 가시 돋힌 말을 했던 것일까. 메이코는 그런 다네다의 말에 상처받고도 다네다의 졸업연주회에 와 주었다. 가사를 까먹었던 다네다는 그 자리에서 그만 또 자신이 하고 싶은 말, 그러나 메이코에겐 상처가 될 말을 노래의 가사 대신 불러버리고 말았다. 느긋한 행복이 계속 된다 해도 그것으로 만족하는 척하는 어른이 되고 싶진 않다고. 그러니 나에겐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다네다는 승용차와 부딪히고 공중을 붕 날았던 것 같은데, 그리고 눈물도 조금은 흘렸던 것 같은데, 어느새 도로 위에 누워 파란 하늘을 보고 있다.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떠올린 1년 하고도 반 년 전의 기억. 그날 만든 러브송은 창피한 마음에 들려주지 못했지만, 돌아가면 꼭 메이코에게 불러주겠노라 다짐하면서, 다네다는 마음 속으로 말한다. 어서, 집으로 가자고.

  다네다는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기억을 떠올리다가 '집으로 가자'며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결국 다네다는 집으로도 메이코에게로도 그리고 그 누구에게로도 돌아오지 못한다.


#05. 남겨진 사람들의 노래

  다네다가 사라져서 허전해진 자리를 메꾸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메이코에게 뿐만이 아니라 빌리와 가토 아이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던 어느날, 다네다의 아버지가 다네다의 물건을 가지러 메이코에게 찾아온다. 다네다가 사라진 것이 자신 때문이라며 울먹이는 메이코에게 다네다의 아버지는 다네다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사람이 바로 메이코이니 사라진 다네다를 위해 꿋꿋이 살아달라고 부탁한다. 다네다의 아버지가 다네다의 물건을 모두 챙겨간 뒤 덩그러니 남은 다네다의 마지막 유품, 기타. 메이코는 그 기타를 집어든다. 어쩌면 그 기타만이 음악을 사랑했던 다네다를 온전히 증명하는 길이 될 지도 모를 것이란 생각으로 메이코는 기타를 어깨에 맨다. 그리고 빌리와 가토를 찾아간다. 사라진 다네다를 기억 속에 묻기 전에 다시 한 번 다네다가 서고 싶어했던 무대 위에 서 보자. 다네다가 느끼려고 했던 열정과 꿈, 땀과 환호를 다네다의 입장에서 느껴보자. 그럼 좀 더 그를 편안히 묻을 수 있겠지. 그러니까 다시 한 번만 그를 대신해 무대 위에 서 보자.

  이로써 메이코와 빌리, 가토는 새로운 밴드를 결성한다. 그리고 다네다의 곡 '소라닌'으로 무대에 선다. 다네다의 기타를 들고 다네다의 곡 '소라닌'을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메이코와 빌리, 그리고 가토. 다네다의 부재는 아픔과 슬픔을 안겨다 주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다시 노래해야 한다. 그들의 삶은 또 다시 시작 되고 있으니까.


#06. 또 다시 청춘

  열광적인 무대를 뒤로 하고 떠나는 메이코에게 떠오르는 기억은 다네다와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다. 너무나 오래된 것만 같은 기억들. 메이코는 이제 아픔과 슬픔 속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사라져 버린 다네다를 잊어가는 것도 이제는 좀 수월해 질 것이다.

  무대 위에서의 공연을 끝낸 며칠 뒤, 메이코는 이사를 한다. 다네다와 함께 살 때는 방이 조금 컸지만, 이제 메이코에게 방은 그렇게 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도 새로운 시작같은 의미였을 것이다. 다네다의 기타를 들고 다시 무대 위에 설지, 아니면 적성에 맞지도 않고 지긋지긋하기만 하던 직장으로 돌아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제 다시 시작인 것이다. 해 보고 싶었던 것은 모두 해 보았다. 또 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또 시작하면 된다. 뭐든 시작하면 또 다시 청춘이고, 또 다시 젊은 꿈을 꿀 수 있는 것이니까. 그 꿈이 현실과는 심하게 동떨어져 있기에 꽤 슬프고 치명적일는지는 몰라도, 또 누군가가 철없는 짓을 하느라 허송세월을 보낸다 핀잔할는지는 몰라도, 꿈을 꾼다는 것은 늘 그렇게 가슴 벅찬 설렘과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리고 순순한 철없음을 동반하지 않던가.

  아직 늦지 않았다. 눈물 흘리지 말고 펼쳤던 날개를 꺾지 말고 다시 한 번 날아오를 때이다. 날아오를 곳에 우리들의 또 다른 청춘이 우릴 기다리고 있다.



소라닌
                                           by 다네다

서로의 다른 생각은 하늘 저편으로
이별의 연속인 인생이여
아주 희미한 미래가 보이는 듯하니
안녕이라네


☆ 그때의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의 나로는 영원히 돌아갈 수 없네


그 옛날 너와 내가 살던 작은 방은
이미 다른 사람이
너에게 들은 상처의 말도
무의미한 것 같았던 하루하루도
추운 겨울의 차가운 캔 커피와
무지개빛 긴 머플러와
종종걸음으로 뒷골목을 빠져 나가
기억을 떠올려 본다


☆ (반복)

느긋한 행복이 영원히 계속된다 해도
나쁜 씨가 싹을 틔워
이제 안녕이라네


☆ (반복)

이별이 나쁠 것도 없지
어디선가 늘 건강하기를
나도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꼭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