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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 검은 비밀의 밤 - 딘 쿤츠

by 오후 세 시 2009. 4. 13.
검은 비밀의 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딘 R. 쿤츠 (제우미디어,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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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 C

  이야기에서 '단서'는 사건의 실마리로써 작용해야 한다. 사건 해결의 실마리로 등장한 '단서'가 이야기 속에서 소용의 가치를 잃으면, 그 '단서'는 더 이상 '단서'로서 존재할 수 없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단서'는 무의미한 소재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서사를 지닌 현대의 많은 콘텐츠들은 이런 '단서'들을 다수 내포하고 있다. 특히 그 콘텐츠들의 서사가 대책없이 무한한 가지들을 뻗어나갈 때-즉 소서사가 대서사로 나아갈 때[각주:1]-, 기존의 '단서'들은 무의미한 소재로 탈바꿈되곤 한다. 그때, 무의미한 소재로서의 '단서'는 비유도, 상징도 될 수 없고, 열린 결말의 소재로도 소용되지 못한다. 그것은 그저 해결되지 않은 의문으로서의 '무의미의 단서'로 남을 뿐이다.

  미스터리물에서의 '단서'가  무의미한 소재로 비쳐질 수도 있다. 이때의 '단서'가 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로써 전혀 작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의미의 단서'와 '미스터리물에서의 단서'는 엄격히 다르다. '미스터리물에서의 단서'가 앞서 이야기한 '무의미의 단서'들과 다른 이유는 '미스터리물에서의 단서'는 그래도 '있을 법'한 포즈를 취함으로써 설득력을 갖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X-File에서 '외계인'이나 'UFO의 존재'가 비현실적임에도 불구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은 그것들이 '있을 법'한 포즈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무의미의 단서'는 '있을 법'한 포즈조차 취하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 단서들은 이후에 취하려고 했으나 소용의 가치가 떨여졌기 때문에 폐기처분 된 '이제는 불필요한 소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설령 그 단서들이 '있을 법'한 포즈를 취하려 노력하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설득력이 부재한 채로 억지스럽게 남아야만 한다. 즉, 이전의 소용가치 때문에 부득이하게 이용되기는 했으나 이제는 딱히 뺄 수도 없기에 변명을 통해서나마 엉거주춤한 상태로 남아야 한다는 말이다.

  『검은 비밀의 밤』에는 그런 '무의미의 단서'들이 상당수 포진되어 있다. 처음에는 사건을 끌어가기 위한 주요 소재로 채택되었던 '단서'들이 이야기의 끝에 가서 소용의 가치를 잃으면서 버려지는 것이다. '에이미와 브라이언이 이상한 소리를 듣고 알 수 없는 그림자의 형체를 보는 것', '에이미가 죽은 자신타 수녀의 전화를 받는 것', '니키(소설 속 개의 이름)가 윤회의 업보 때문에 에이미와 만난 것처럼 그려지는 것', 등은 초반부에 사건과의 관련성이 있는 듯 서술되다가 버려지는 대표적인 '무의미의 단서'들이다.

  '에이미와 브라이언이 이상한 소리를 듣고 알 수 없는 그림자의 형체를 보는 것'을 한 번 보자. 이 현상은 이야기의 앞 부분에서 에이미와 브라이언을 매개해 주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에이미와 브라이언, 두 사람은 그들에게 이런 현상이 타나는 것이 어떤 초자연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이것 때문에 동류의식을 느끼고 가까워지며 이를 계기로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러나 이후부터 두 사람에게 나타나던 그 현상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필요없는 소재가 되어 버린다. 두 사람에게 나타났던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언급은 없어지고 새로운 사건이 두 사람 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우연한 계기로 어떠한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지만 그 사건에 두 사람을 끌어들였던 그 초자연적 현상은 사건의 원인도 아니고 사건을 해결할 실마리도 아닌 '무의미의 단서'로 남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나머지 '무의미의 단서'들도, 이 단서들이 등장인물들을 사건에 끌어들이는데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종결된 뒤 어떤 부연 설명없이 방치된다는 점에서, 사정은 비슷하다.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딘 쿤츠의 『검은 비밀의 밤』은 독특한 주제와 소재, 그리고 꽤 탄탄한 스토리를 지닌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에 몰입되는 속도도 빠르고 일련의 사건을 따라나가는 것도 흥미로우며 개별적인 사건들이 하나의 커다란 이야기로 엮이는 방식도 훌륭하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 것처럼 이 소설에서도 현대의 수많은 콘텐츠들이 안고 있는-즉 소서사가 대서사로 나아갈 때 이야기꾼의 역량 부족으로 말미암아 '의미있는 단서'들이 '무의미의 단서'들로 대체되어가는-문제점이 지적된다. 이런 문제점이 극복되었더라면 탁월한 서사로 자리잡을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든다. 덧붙여 이 소설이 대서사가 아닌 중편 서사 정도에 머무르면서 이런 문제점을 내포했기에 아쉬움은 더 크다.


<각주>
  1. 현대의 콘텐츠들은 대서사를 지향한다. 미국의 드라마가 시즌제로 양산되고, 영화가 시리즈물로 계획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그 점을 잘 알 수 있게 한다. 『베르세르크』나 『드래곤볼』과 같은 일본 코믹스류도 대서사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대서사를 지향하고 있는 콘텐츠들 중 기존의 '단서'들을 토대로 커다란 대서사를 타당성 있게 완성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