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점 : B+
행복한 아빠, 그리고 행복한 우리를 위해 -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
#01. 행복과 불행
바라고 원하는 것들을 만족스럽게 얻었을 때-이를테면 자신이 희망하던 것을 이루거나, 갖고 싶었던 것을 풍족하게 갖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행복을 느낀다. 반대로 바라고 원하는 것들이 부재하고 있거나, 그러한 것들을 얻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태어나 처음 본 빛은 딱 창문 크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우리들 바깥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 아버지가 어디 계셨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항상 어딘가에 계셨지만 그 곳이 여기는 아니었다.
어머니는 잠이 들었다. 나는 외로워졌다. 그러나 세상은 조용했고, 햇빛은 헤어진 애인이 보내온 예의바른 편지처럼 여전히 저쪽 방바닥에 놓여 있었다. 예의바름, 그것은 태어나 내가 세상에 대해 느낀 최초의 불쾌(不快)였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불행 속에 놓이게 된다. 행복은 '우리들 바깥에 존재'하고 '여전히 저쪽'에만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한 행복은 '내'가 처한 불행에 비해 환하게 빛나고 '예의바'르기까지 해서 '불쾌'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행복이 불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만족스럽게 갖추어진 것이기 때문에 '불쾌'한 것은 아니다. '나'에겐 없거나 갖추어지지 않은 것들-바깥에 존재하는 창문 크기만한 빛, 여기에 없는 아버지, 저쪽 방바닥 위의 햇빛-이 '내'가 놓인 상황을 예의바르지 못하고 어두운 것처럼 보이게 하기 때문에 '불쾌'한 것이다. 이를테면 '내'가 부모가 없는 자식이라거나 가난한 집 자식이기 때문에 행복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나 어머니가 없는 자식은 가정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거나, 없는 집 자식이라 예절을 모른다는 식의 오해들이 '나'의 상황을 예의바르지 못하고 어두운 것처럼 몰아가기 때문에 행복이 불쾌하게 느껴진다는 말이다.
#02. 불행을 극복하는 그들의 자세
하지만 어머니는, 사실 그녀에게 닥친 현실이 매우 불행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농담'과 '장난'으로 불행을 극복하려 한다.
어머니는 농담으로 나를 키웠다. 어머니는 우울에 빠진 내 뒷덜미를, 재치의 두 손가락을 이용해 가뿐히 잡아올리곤 했다.
그리고 불행을 극복하는 자세를 '나'에게도 가르쳐준다. 그것이 간혹 '무지하게 상스'러운 것이기도 했지만, '나'는 어머니를 통해 불행을 불행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를 불행한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방법을 물려받는다.
어머니가 내게 물려 준 가장 큰 유산은 자신을 연민하지 않는 법이었다. 어머니는 내게 미안해하지도, 나를 가여워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가 고마웠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게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정말로 물어오는 것은 자신의 안부라는 것을. 어머니와 나는 구원도 이해도 아니나 입석표처럼 당당한 관계였다.
'어머니는 내게 미안해하지' 않음으로써 누군가가 '나'에게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과 '나를 가여워하지' 않음으로써 '내'가 불쌍하거나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해 준다. '어머니와 나'는 다만 좌석표가 없어 자리에만 앉지 못했을 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행복한 삶을 여행하는, '입석표'를 손에 쥔 '당당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불행을 행복으로 극복하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불행을 불행하지 않게 받아들이려는 시도, 불행과 행복은 종이 한 장 차이밖에 안 난다는 생각, 더 나아가 같은 상황이라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상황이 불행한 순간과 행복한 순간으로 나뉘어질 수 있다는 작은 마음이 우리를 행복으로 이끄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컵에 반만큼 남겨진 콜라를 보고 누군가는 '이것밖에 안 남았어?'라고 생각하는 반면, 누군가는 '이만큼이나 남았네!'라고 생각한다고도 하지 않던가.
나는 어머니가 좋았지만 그것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 지 몰라 자꾸만 인상을 썼다. 나는 내가 얼굴 주름을 구길수록 어머니가 자주 웃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 나는, 사랑이란 어쩌면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 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아버지뿐 아니라 운동 중인 모든 사람이 우스꽝스러운 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동네 공원에서 소나무에 대고 배치기를 하는 아저씨나, 손뼉을 치며 걷는 아주머니들을 볼 때마다 내가 괜히 부끄러워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진지했고 열성적이었다. 마치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조금씩 우스워져야 된다는 듯이.
우스워진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건강해지는 것이고 그것은 다시 말하면 행복해지는 것이다. '내'가 자꾸만 아버지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상상하는 이유도 어쩌면 거기에 있는지 모른다. '어머니와 나'를 버리고 떠나버린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하며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바에는 차라리 아버지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상상하며 행복해지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단순한 생각. 그렇지만 그런 생각에는 '어머니와 나'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도 어딘가에서는 행복할 것이라는 작은 바람이 담겨져 있다.
아버지가 뛴 것은 그때부터였다. 아버지는 달동네 맨 꼭대기에서부터 약국이 있는 시내까지 전속력을 다해 뛰었다. 오줌 마려운 듯 벌게진 얼굴로 아버지는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고, 아버지를 보고 놀란 개가 짖자 온 동네 개들이 일제히 지어대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계속 뛰고 계신다. 나는 분홍색 야광 반바지 차림의 아버지가 지금 막 후꾸오까를 지나고, 보루네오섬을 거쳐, 그리니치 천문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모습을 본다. 나는 아버지가 막 스핑크스의 왼쪽 발등을 돌아,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의 백십 번째 화장실에 들러, 이베리아반도의 과다라마산맥을 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아버지가 평생 동안 가장 열심히 뛰었던 적은 언제였을까? 그건 아마도 어머니를 안기 위해 피임약을 사러 가던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아버지도 온 세상을 얻은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을 것이다. '입이 찢어'질 정도로 아버지는 행복해했을 것이다. '내'가 자꾸만 아버지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열심히 뛰고 있는 모습으로 상상하고 있는 것은 아버지가 어딘가에서 행복한 순간들을 만끽하고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게 상상한다고 해서 아버지의 행복이 '어머니와 나'에게 불행을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우스워진다는 것은 행복해진다는 것이'라는 가벼운 역설을 통해 '나'는 아버지의 모습을 이토록이나 우습게 그려냄으로써 아버지를 향한 깊은 그리움을 행복하게 이겨내려고 하고 있다. 게다가 아버지에게 가장 행복했을 순간이 달리는 순간이었을 것이므로 '우스꽝스럽게' + '뛴다'는 것은 '행복' + '행복'이니, 아버지에게 '우스꽝스럽게 뛴다'는 건 두 배로 행복해지는 일이 될 터였다.
#03. 불안하게 흔들리는 행복
하지만 불행과 행복은 정말로 종이 한 장밖에 차이가 안 나는 것일까? 아버지의 부고라는 소식을 싣고 항공우편을 통해 '가뿐하게' 당도한 편지 한 장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어머니와 나'를 무참히 흔들어 놓는다.
'언제나 아버지를 기다리며 자랐던 저는,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유품에서 찾아낸 당신들의 주소 앞으로 어머니 모르게 편지를 보냅니다.'
……모두 거짓말 같았다.
……모두 거짓말 같았다.
하지만 정작 거짓말을 한 것은 나였다. (……) 어머니의 침울한 표정을 보자 울컥하니 신경질이 났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가……"라고 말했다. 어머니가 매맞은 강아지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버지가…… 미안하대. 평생 미안해하며 살았대. 이사람 말로는." 어머니의 눈망울이 흔들렸다. 나는 내친 김에 한마디 더 했다. "그리고 엄마, 그때 참 예뻤대……" (……) 어머니는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 부분을 한참 동안 들여다 보더니 손으로 곱게 매만졌다.
나는 턱밑까지 이불을 끌어올린 채 가만히 누워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의 생활, 아버지의 죽음, 아버지의 잔디깎이, 뭐 그런 것들. 그런데 아버지는 아직도 내 머릿속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해왔던 상상이라 잘 지워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결국 용서할 수 없어 상상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버지를 계속 뛰게 만드는 이유는 아버지가 달리기를 멈추는 순간, 내가 아버지에게 달려가 죽여버리게 될까봐 그랬던 것은 아닐까. 그러자 갑자기 나는 서러워졌고, 그 서러움이 나를 속이기 전에 빨리 잠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두 거짓말 같았다'. 아버지가 뛰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도, 그 아버지가 미국에서 결혼했다가 이혼해서 이혼한 아내의 잔디나 깎아주었다는 사실도,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와 '나'는 행복한 사람일 것이라는 사실도, 모두 거짓말 같았다. 모든 것이 거짓말 같아서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한다. 그것은 어떻게든 불행해지지 않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나'는 자꾸만 불행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게 되고 만다.
#04. 다시, 행복으로 가는 길
그렇지만 택시요금 할증이 풀릴 즈음 들어온 어머니는 불행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은 '나'와는 달리 자고 있는 나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깨운 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재치를 발휘하며 두 손가락으로 '나'의 뒷덜미를 슬그머니 잡아끌어 올린다.
아주 긴 고요가 어머니의 숨소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어머니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어머니는 작게 움츠러든 몸을 더욱 안으로 말며, 죽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무엇도 없는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잘 썩고 있을까?"
"잘 썩고 있을까?"
물론 어머니가 이런 재치를 발휘한 이면에는 '내'가 항공우편으로 온 편지를 거짓으로 해석한 탓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어머니에게 배운 행복해지는 방법의 한 가지 아니었던가? 그리고 어머니와 '내'가 바뀐 입장이었다면, 어머니 또한 행복해지기 위해 그렇게 거짓말을 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나'는 그날 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그리고 그 밤 '나'는 아버지의 달리는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본다.
웃으면서 달리는 아버지. 달리는 걸 좋아하는 아버지, 그러다 나는 문득, 아버지가 그동안 언제나 눈부신 땡볕 아래서 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아버지가 비록 세상에서 가장 시시하고 초라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 그런 사람도 다른 사람들이 아픈 것은 같이 아프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니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를 상상했던 십수년 내내, 쉬지 않고 달리는 동안 늘 눈이 아프고 부셨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밤 아버지의 얼굴에 썬글라스를 씌워드리기로 결심했다. 나는 먼저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기대감에 부푼, 그러나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는 듯 작게 웃고 있다. 아버지가 가만히 눈을 감는다. 마치 입맞춤을 기다리는 소년 같다. 그리하여 이제 나의 커다란 두 손이, 아버지의 얼굴에 썬글라스를 씌운다. 그것은 아버지에게 썩 잘 어울린다. 그리고 이젠, 아마 더 잘 뛰실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의 달리는 모습을 떠올리다가 '나'는 문득 아버지는 어쩌면 '나'의 상상 속에서 힘겹게 행복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어머니와 나'만의 눈부신 행복을 위해 달려가는 힘든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달리기가 힘겨운 행복이 아닌 편안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도록 '썬글라스를 씌워드리기로 결심'한다. 아버지의 행복이 곧 '어머니와 나'의 행복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썬글라스를 씌워드리'는 것쯤은 불행을 행복이라고 여기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행복을 향해 가는 모습은 '아버지에게 썩 잘 어울'린다. 그리고 이젠 아마 더 행복해지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행복한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와 나'도 더 행복해질 것이다. 불행과 행복은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이니까. 그리고 '나'는 아마도 마음 속으로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그러니까 자, 이제 '달려라 아비', 행복해지세요, 아빠!!"라고. 아버지에게 '달린다'는 것은 곧 '행복해진다'는 것일 테니까.
'책더미 > 내가 읽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문화] 유행심리 - 마르끄 알랭·데깡 / 이연숙 옮김 (0) | 2009.04.30 |
---|---|
[책/소설] 검은 비밀의 밤 - 딘 쿤츠 (0) | 2009.04.13 |
[책/소설] 첫사랑 - 김연수 (단편) (3) | 2009.04.03 |
[책/소설] 지문 사냥꾼 - 이적 (0) | 2009.03.30 |
[책/소설] 카탈로니아 찬가 - 조지 오웰 / 정영목 옮김 (0) | 2009.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