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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 카탈로니아 찬가 - 조지 오웰 / 정영목 옮김

by 오후 세 시 2009. 3. 25.
카탈로니아 찬가
카테고리 소설/희곡
지은이 조지 오웰 (민음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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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 B+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매우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였다. 얼마 전에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을 다시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민음사 편『동물 농장』과 그 뒷부분에 수록된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열한 쪽 분량의 짧은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짧은 글이 내 관심을 심하게 당겼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이 짧은 글은 조지 오웰이 자신의 작가적 견해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오웰은 자신의 작가적 견해를 인도 뱅골만에서의 경험과 스페인 내전에서의 경험으로 설명하고 있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여기에서 간단하게, 그러면서도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 의하면(물론 조지 오웰은 동물 농장보다 카탈로니아 찬가를 먼저 썼다) 오웰은 당시 '영국에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한 가지 사실-무고한 사람들이 엉뚱하게 비난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것에 분노했기 때문'에 『카탈로니아 찬가』를 썼다고 한다.

  『카탈로니아 찬가』가 쓰여졌던 당시 유럽은 이탈리아와 독일을 필두로 한 파시즘 국가들과 반파시즘 국가들의 갈등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이 시기의 스페인은 원래 공화당이 득세를 한 국가였다. 그런데 스페인령 모로코에 점령군으로 있던 프랑시스코 프랑코가 파시스트 반란을 일으키게 됨에 따라 공화당과 파시스트들이 대립각을 곤두세우게 되었고, 곧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스페인 내전에는 상당히 복잡한 정치 세력들이 얽혀 있다. 그 세력들을 크게 다음과 같이 조직적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크게 분류하면 이들은, 위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파시스트 반란을 일으킨 프랑시스코 프랑코의 세력과 기존의 스페인 정부 세력으로 나뉜다. 즉, 파시스트 반란군과 정부군으로 나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군은 다시금 세세하게 분류할 필요가 있다. 첫 번째는 혁명을 일시 중단하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일에 몰두하자는 대부분의 좌파, 두 번째는 혁명을 전진시켜 완수하는 것이 곧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라고 믿는 통일 노동자당(조지 오웰은 통일 노동자당에 속해 있었으나 그는 대체로 첫 번째 부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세 번째는 혁명을 후퇴시키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일에 몰두하자는 공산당.


  처음에 파시즘에 반대하여 정부군에 참여한 이들 세 세력은 같은 목적을 가지고 프랑코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앞장 섰다. 그러나 내전이 길게 연장되자, 이들은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의 정치적 지위 확보 문제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정부군은 자신들의 우승을 점치고 있었다. 선수를 친 것은 공산당 세력이었다. 이들은 내전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통일 노동자당을 트로츠키주의자들로 몰기 시작했다.

  그 배경 이야기를 더 해 볼까 한다. 파시스트 반란을 일으킨 프랑코는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아낌없는 지원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때문에 정부군은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소련을 내전에 개입시킨다.(스페인 정부는 소련의 지원을 받아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탈리아와 독일의 지원을 받는 프랑코에게 밀릴 공산이 매우 컸다.) 그러나 소련을 등에 없은 스페인 정부군의 공산당 세력은 전쟁 종결 후 자신들의 정치적 지위 확보를 위해 통일 노동자당을 파시스트들의 앞잡이이자 트로츠키주의자들로 몰아세운다. 거기에 국제적인 모든 언론들이 이를 진실처럼 위장하고, 그 때문에 통일 노동자당은 파시즘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들의 비난을 사기에 이른다. 그리고 스페인 내부에서도 통일 노동자당을 처형하려는 움직임이 서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공산당 세력의 통일 노동자당 견제는 자연히 스페인 정부군의 내분으로 이어졌고, 그 때문에 스페인 정부군의 내부는 엉망이 되었다. 결국 스페인 정부군은 소련의 지원을 받고도 프랑코에게 패배하고 만다. 그리고 마침내 스페인은 프랑코의 통치 아래로 들어가게 된다. 정부군의 내분이 결국을 패배를 부르고 만 것이다.

  오웰은 정부군 세력으로 내전에 참전했다가 정부군의 다른 세력들이 통일 노동자당의 뒤통수를 치려고 할 때,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고 스페인을 탈출,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스페인 내전에 정부군으로 참전했다가 영국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을 숨김없이 써 내려감으로써 『카탈로니아 찬가』를 완성시킨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바로 그 스페인 내전에 대한 기록이다.

  스페인 내전과 관련된 주요 작품으로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는 작품이 있다. 하지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는 스페인 내전이 단순한 소재로 사용되었다. 이와는 달리『카탈로니아 찬가』는 스페인 내전을 단순한 소재로 삼지 않고 그 때의 생생함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즉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픽션이고 『카탈로니아 찬가』는 논픽션인 셈이다. 그래서 『카탈로니아 찬가』를 보도 문학이라 하기도 한다.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는 스페인 내전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묘파해내고 있다는 점 외에,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최대한 견제하면서 스페인 내부의 정치적 움직임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서술하려 했다는 점에서도 훌륭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잿빛으로 덧칠된 전쟁터를 실로 눈 앞에 보이듯이 묘사하고 있다. 동지와 적국 간에 오고 가는 대화들, 그들의 눈빛, 전쟁터 속에서의 모든 사건들은, 전쟁 속에서이지만 따뜻하게 다가온다. 이런 점은 서로 다른 혁명 안에 속해 있으나 모두가 생명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다. 총알 백 발을 쏘면 그 중에 하나가 상대 적군에게 맞을까 말까했고, 적군과 대치하고 있으면서도 그들과 서로의 신경을 건드리는 농담들을 주고 받기도 했다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경전이 아니라 그들이 농담을 주고 받았다는 점이다. 그만큼 스페인 내전의 현장은 인간적이었다.

  이 책을 모두 읽고 난 뒤에 느낀 것은 진실이 묻히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언론의 허황된 거짓 보도의 난무와 지배 세력의 무거운 압력 속에서도 『카탈로니아 찬가』가 이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고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