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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더미/내가 읽은 책

[책/소설] 지문 사냥꾼 - 이적

by 오후 세 시 2009. 3. 30.
지문 사냥꾼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이적 (웅진지식하우스,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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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 B

#01 글 잘 쓰는 이적

  요 며칠 전부터 이적의 『지문 사냥꾼』과 타블로의 『당신의 조각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가수들이 쓴 소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아련님 블로그에 놀러갔다가 이적의 『지문 사냥꾼』에 대한 포스트를 보고는 이 책을 한 번 읽어봐야 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벼르기를 며칠 간. 친구가 애용하는 가평 도서관에 들렀을 때, 친구의 회원증으로 냉큼 이 책을 빌렸다. 신비하고, 독특하고, 뭔가 가볍지 않은 상징들이 덧씌워진 이야기들을 읽어나가면서, 이적이라는 가수가 참 부러웠다. 음악도 잘 만들고, 노래도 잘 하고, 노랫말도 잘 쓰는데, 거기다, 나 원 참, 글재주까지 비상하다니…….


#02 한국의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문 사냥꾼』에 실린 글들을 딱히 어떤 글들과 비교해서는 안 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겐 문득, 어떤 작가가 떠올랐다. 많은 사람들이 카프카의 작품과 닮았다고 하던데, 내게는 그렇게 읽히지 않았다. 허나 환상문학 계열과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긴 하더라. 아무튼, 이적의 글들을 읽으면서 떠올린 작가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였다. 특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 시리즈와 『지문 사냥꾼』은 닮은 곳이 참 많았다.

  소재의 기발함.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 과정. 상식을 깨뜨리는 상상력. 이런 것들이 막힘 없이 술술 풀어져 나가면서 완성되어지는 완벽한 하나의 이야기. 이런 점들이 많이 닮았다. 이적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나 둘 다 타고난 이야기꾼이 아닌가 싶다.


#03 서사와 상징의 하모니

  이적의 『지문 사냥꾼』이 지닌 특징은 서사성과 상징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일단 글이 전개되어나가는 구성력이 참 일품이다. 그것은 서사성이 잘 갖춰져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처음과 끝이 끊어짐 없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하는 것은 글의 자존심과도 같은 것이다. 아니 모든 서사성을 갖춘 것들의 자존심일 터다. 중간 중간에 포진되어 있는 소재들과 전체 이야기들과의 통일성도 매우 중요하다. 이 통일성이 결여되면, 이야기는 베이스가 없는 락밴드나 김치 없는 라면, 단무지 빠진 김밥과 다를 것이 없다. 이적의 글은 그런 것들을 두루 잘 갖췄기 때문에 꽤 괜찮은 서사성을 획득했다.

  이적의 글들은, 이야기 하나 하나가 모두 탄탄한 서사성을 갖춤과 동시에 상징성 또한 겸비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상징성이란 글 전체가 끌어안고 있는, 혹은 글 전체가 뿜어내고 있는 메시지라고도 할 수 있겠다. 특히 이적의 글에 보이는 상징성은 매우 명료해 보인다. 이야기들이 마치 시같다고나 할까? 여타의 순수문학 계열에 속해 있는 소설들이 열린 결말을 열어 놓고 넓은 담화의 장을 독자들에게 제공한다면, 이적의 글들은 '너희들이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난 이렇게 생각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계간지인 『문학동네』 2009년 봄 통권 58호를 보면 '작가의 눈-기획 좌담'으로 이병률 시인이 이적, 타블로와 함께 좌담 형식으로 이어나간 「세상에 대고 말한다, 나나 잘하자고」라는, 좌담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이적이 『지문 사냥꾼』에 어떤 식의 상징을 넣어두었는지 「세상에 대고 말한다, 나나 잘하자고」라는 좌담을 통해 잠시 살펴보자면 이러하다.

  이병률 : 그러면 책 얘기를 좀 해볼까. (중략) 그래도 결국은 두 소설집 모두가 내적인 어떤 것에 대해서 그리고 있는 것일 텐데, 그 내적인 무엇들을 각자 자신의 문학세계와 연결해서 좀더 부연설명을 한다면?
  이 적: 문학세계란 게 따로 없어놔서…… 저는 그냥 재밌자고 쓴 거예요. 그 재미의 차원이 여러 가지가 있을 순 있겠죠. 그런데 가끔 오독되는 부분들도 있더라구요. 책에 보면 「잃어버린 우산들의 도시」라는 글이 있어요. 사실은 이게, 말하는 게 어떨지 모르겠지만, 종교나 내세에 대한 이야기를 약간 짖궂은 농담으로 덧댄 거예요. 지하철에서 만난 우산이 자기가 인간과 비로부터 해방된 '잃어버린 우산들의 도시'에 간다고 행복에 젖어 장광설을 늘어놓는데, 결국 나중에 공익근무요원이 이 우산을 분실물보관소로 가져간다, 는 식으로 끝나는 이야기예요. 인간들이 꿈꾸는 천국이란 것이, 결국 비가 오지 않는 우산들의 도시처럼 무의미하고 이상한 바람이 아닌가 - 비가 오지 않는데 우산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 그렇듯 지금 이 세계가 아닌 곳, 예를 들어 고통이 없고, 고민이 없고, 행복하기만 한 세계라는 것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 그런 게 존재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경쾌하게 쓴 거거든요. 근데 그렇게 읽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구요. 제가 잘못 쓴 거겠죠.

- 『문학동네』 2009년 봄 통권 58호 37-38쪽
작가의눈 - 기획좌담 「세상에 대고 말한다, 나나 잘하자고」중에서

  비단 「잃어버린 우산들의 도시」 뿐만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글들이 이런 식의 상징을 내포하고 있다. 이적의 글들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렵게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쏘아 붙이는 편이어서 그 상징성은 더 부각되는 듯 하다.

  소설이 서사성을 지닌 반면 상징성에서는 떨어지고, 시가 상징성을 지닌 반면 서사성에서는 떨어진다는 점을 상기시켜 볼 때(물론 우화소설이나 서사시의 경우에는 그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편이지만), 이적의 글은 그 두 가지가 참 조화롭게 어울려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이적의 글은 그가 「세상에 대고 말한다, 나나 잘하자고」라는 좌담에서도 언급했듯이 우화적인 요소도 꽤 있다.

  이병률 : 그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서정적으로 읽기 쉬운 코드이다보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읽혔을 거예요. 그러면 소설을 쓰면서 의도나 메시지를 중요시하는 작가예요, 이적은?
  이 적: 그것보다는, 어떤 은유인 거죠.
  타블로 : 형 책을 읽고 제가 드는 느낌은, 이게 맞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내면적으로 고민하는 것들을 외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드는 것 같거든요. (후략)
  이 적 : 우화적인 느낌도 있을테고……  저는 글을 쓸 때 그렇게 심각하거나 하진 않아요.

- 『문학동네』 2009년 봄 통권 58호 38쪽
작가의눈 - 기획좌담 「세상에 대고 말한다, 나나 잘하자고」중에서


#04 새로운 판타지, 혹은 환상 문학

  이 적 : 좋아하는 글들이, 저는 사실 본격 순수문학, 이런 걸 썩 좋아하진 않아요. 싫어하지도 않지만. 그러면서도 마법사가 나오거나 하는 판타지 소설 같은 건 또 싫어해요. 제가 좋아하는 게, 딱 그 사이에 있는 것들, 카프카, 마르케스, 보르헤스, 마술적 사실주의, 그리고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그런 것들이에요. 또 대하소설이나 그런 것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오히려 콤팩트하게 확 뭔가 환기시키고 싹 지나가는,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 『문학동네』 2009년 봄 통권 58호 28쪽
작가의눈 - 기획좌담 「세상에 대고 말한다, 나나 잘하자고」중에서

  이적은 「세상에 대고 말한다, 나나 잘하자고」라는 좌담에서 판타지를 싫어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글들 중 책의 제목이기도 한 「지문 사냥꾼」이라는 글은 거의 판타지 문학이라 봐도 무방하다. 중세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시공간적인 상황, 동원되는 인물들의 행위들이 판타지 문학에서 많이 보아오던 것들이다. 글에서는 지문 사냥꾼이 지닌 능력을 악마의 저주나 신비한 능력 정도로 풀이하고 있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판타지 문학에서의 마법과 다를 것이 없다. 이적은 판타지를 부정했으나 그의 작품 「지문 사냥꾼」은 새로운 판타지를 꿈꾸고 있는 듯 보였다.

  반면 「제불찰 씨 이야기」의 경우는 확실히 환상문학에 다가서 있다. 특히 제불찰 씨에게 오는 몸의 변화는 확실하게 카프카의 『변신』을 떠오르게 한다. 그 외에도 「음혈인간으로부터의 이메일」, 「외계령」, 「잃어버린 우산들의 도시」 등도 환상문학 쪽에서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카프카의 작품들이 모두 환상문학에 편향되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카프카와 닮았다라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다만 카프카의 『변신』과는 상당 부분 닮았다.

  우리나라 같은 순수문학 예찬의 문학판에서 이적의 『지문 사냥꾼』과 같은 책은 우리나라의 여타 장르문학이 그러했듯이 어떤 자리도 차지할 수 없을 듯하다. 이적은 이병률 시인, 타블로와의 좌담에서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고,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을 썼을 뿐이라고 하지만, 독자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다. 이외수 같은 작가도 아직은 문학판에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독자들은 이외수를 진짜 작가라고 생각한다. 이적의 본업이 작가가 아닌 바에야, 독자들이 그에게 『지문 사냥꾼』 이상의 주문을 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그의 글솜씨를 알게 된 이상 기대를 안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 중 한 명의 독자로서 그의 글쓰기가 멈추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새로운 판타지 문학, 혹은 새로운 한국적 환상문학이 그에게서 뿜어져 나올지 또 누가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