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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로그/다이어리

2016년 6월 15일 일기

by 오후 세 시 2016. 6. 15.


#01. '놓음'에 대하여.


  '나'라는 존재는 타인에 의해 재단되고 재봉되어 진열장에 전시된 옷에 불과하구나. 아무리 '나'라는 존재에 대해 외쳐도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나'를 만든다. 누누이 이야기했던 진심에 대한 나의 트라우마는 거짓이 아니었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진심은 또다시 짓밟히고 짓이겨지는구나. 나는 술에 취하지 않아도 진심을 말했었다고 생각한다. 그 진심이 외면당한 자리에서 나는, 쥐었던 소중한 것들을, 놓아야 하는 것일까. 그래야 하는 것일까. 실망스럽다. 좌절감이 느껴진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외롭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누구에게 '나'를 외친 것이냐.


#02. '술'에 대하여.

  '술'은 당신들에게 무엇인가. 그동안 쓰고 있던 가면을 벗을 수 있게 해 주고,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의지를 북돋아주는 묘약인가. 모두가 취한 자리에서 홀로 말짱한 정신으로 만들어진 '나'의 모습을 전해듣는 기분을 아마 당신들은 끝끝내 모르겠지. '술'이 없이는 그 모든 것이 불가능할 테니까. '술'은 무엇인가. 타인과 가까워지고 진심을 격의없이 터놓을 수 있게 해준다는 말은 집어치우기를. 나는 모르겠으니까.


#03. '나'에 대하여.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배려가 넘치는 사람.

   자의적을 손을 잡아줬다가 자의적으로 손을 놓는 사람.

   그래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타인을 심하게 소외시키는 사람.

   그러면서 스스로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만을 티나게 챙기는 사람.

   간혹은 자신의 의사를 타인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억지로 강요하려는 사람.

   그래서 스스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의 생각은 때때로 무시해버리는 사람.

   그러면서도 끝끝내 모두에게 친절하고 배려가 넘치기 위해 호불호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 사람.

   그런 이유로 스스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에게 의도와는 상관없이 상처를 주기도 하는 그런 사람.


   당신들이 술에 취해 전해준 '나'의 모습. 나에겐 타인도 알고 나도 아는 '나'이면서 동시에 타인만 알고 나는 몰랐던 '나', 어쩌면 진실일지도 모르는 '나', 어쩌면 인정하지 않으려는 '나', 그래서 불편한 '나', 내가 몰랐던 '나'.


#04. 다시 '놓음'에 대하여.

  짧은 시간이었다. '나'를 이해시키기 위한 시간 치고는. 아무리 외쳐본대도 '나'를 이해시키기에는, 그래 짧은 시간이었지. 결코 긴 시간이 아니었다. 놓은 상태로 시작해야 쥐고 가야 할 사람들도 많았을텐데, 처음부터 너무 많은 사람들의 손을 쥐려고 했던 것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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