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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로그/다이어리

2011년 10월 14일. 잡담.

by 오후 세 시 2011. 10. 14.
  분기별로 생리한다는 말에 욱했었지. 어떤 장난, 혹은 농담은 장난이고 농담이라는 걸 알면서도 '씨발'이란 말을 이빨 사이에 씹어물기도 한다. 아마도 '미친놈ㅋㅋㅋ' 정도의 댓글을 남겨주는 것이 도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 씨발 좆같네.'라는  감정이 내면에서 용솟음치는 것을 견디다 못해 결국은 야리꾸리하게 '?'란 댓글을 남겨버리고 말았다. 하나의 기호이지만 여러모로 많은 것들을 함축하고 있는 퀘스천 마크. 욱했던 감정의 잔여물이 조금은 묻어 있었다, 그 마크에는.


  친구들로부터 하도 많이 들은 이야기라 이제는 나 스스로 지레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남들은 알지만 나는 모르는 자아'라고 생각했던 것들. 계집애 같다거나, 여성적이라는 말은 심심찮게 들었고, 심하게 '게이'라는 소리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꼭 특정집단에서만 나를 그렇게 낙인찍는데, 비록 그것이 농담이었다고 하더라도(진담이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그것이 '남들은 알지만 나는 모르는 자아'라고 인정하기까지는 꽤 힘든 자아 재정립의 과정을 겪어야 했다. 어린 후배 새끼들이 개념을 밥말아 처먹고 나를 '게이같다'고 비아냥대는 걸 웃으며 참고 넘겨야 했던 적도 있다.


  안다. 내가 좀 여성적이긴 하지. 내가 지나치게 감성적이라는 것도 안다. 소심한 면도 있고,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것도 안다. 때론 지나쳐도 상관없을 것들에게 너무 신경쓰는 경향도 있다. 원래 남들이 느끼지 못하거나, 혹은 느껴도 별 말 없이 흘려보낼 수 있는 것들을, 나는 꼭꼭 부여쥐고 사는 성격이다. 그것이 뭇사람들에게는 꼴같잖게 보였을 수도 있다. 가끔은 그런 내 성격들이 내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건 아니잖아? 나는 그 집단에 속해서 그 집단과 마찰없이 지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당연히 마찰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 사람이 살아나가면서 어떻게 단 한 번의 부딪힘도 없이 살아가겠어.


  나는 처음엔 '남들은 알지만 나는 몰랐던 자아'를 발견했고, 지금은 그 '자아'가 참 안쓰럽단 생각을 한다. 게이같단 말, 생리한다는 말에 대해, '아, 그래. 나는 게이같아.', ' 아, 나는 생리를 하지.'라고 쿨하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그 자아. 소심하게 대응하면 병신, 찐따로 낙인찍힐 수 있고, 남들 생각엔 웃기려고 그냥 던져 봤지만 씨발 욕 나오게 짜증 치미는 농담이라도 울컥울컥하지 않아야 하는 그 자아. 불쌍한 내 새끼. 


  여러 개인이 모여 형성된 집단은 집단에 속한 개인을 집단에 맞게 분류한다. 그러니까 나는 이 집단에서 '게이'를 맡고 있어요. 기왕이면 '살가움(ㅋㅋ 살가움이라니...)'을 맡는다거나, '동안(내가 쬐금 어려보이긴 하니깤ㅋ)'을 맡는다고 하면 좋겠지만, 집단의 성격상 그건 용납될 수 없다. 용납될 수 없다는 게 싫지는 않다. 어차피 함께 모여 형성한 집단이니까. 하지만 언제나 '나는 어쩜 이렇게도 게이같을까? 깔깔깔깔!'이랄 수도 없는 거다. 집단을 나무라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에 속한 개개인을 나무라고 싶은 것도 아니다. 어차피 누군가는 조금씩 상처를 주고 누군가는 조금씩 상처를 받는 게 집단 아닌가. 다만, 감정을 억누르기 어려운 씨발스러운 서든어택에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고 욱한다는 거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괜찮다. 나의 경우엔 시간보다는 글을 싸는 걸로 해소하지만. 이렇게 집단과 개인 간의 관계는 유지가 된다. 그게 내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고. 이 집단에서는 꾸준히 '게이'를 맡을 요량이 있다(애석하게도 이 집단에는 내 취향이 없음). 나도 그게 재밌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랬구나~ 나는 여성적이었구나~ 나는 소심한 편이었고, 집착을 잘 했었구나~ 괜한 것에 신경도 많이 썼구나~ 심하게는 게이같기도 했었구나~ 이제야 알겠다~ 내가 그랬다는 걸~ 하지만 나는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계속 그럴 생각이다~ 하지만 생리는 안 한다~ 남자를 사랑할 생각도 없다~ 그러니까 닥쳐야 할 부분에서는 닥쳐라~ ^^



+ 생리한다는 말이 소위 은비성을 지닌 관용적 표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걸 알겠는데,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별 게 다 연관돼서 짜증이 나요. ^^

+ 글로 푸는 것도 여성적이라면 여성적인 거고, 소심하다면 소심한 걸텐데, 나는 이런 부분이 나 스스로에게 참 도움이 많이 된다고 본다.

+ 오늘은 자격지심 폭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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