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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로그/다이어리

2011년 10월 6일. 새벽부터 잡담.

by 오후 세 시 2011. 10. 6.
   매번 계절이 바뀌려고 하면 민감해진다. '신경질적'이 된다는 말은 아니다. 계절의 변화를 잘 느끼게 된다는 의미이다. 특히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계절의 변화에 더 민감한 것 같다. 살갗으로 느낄 수 있는 대기의 변화, 그 계절만이 뿜어낼 수 있는 냄새, 하늘의 원근감. 아마도 이런 감각적인 것이 변화를 감지하는 것들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일 테고, 보통 사람들은 바로 이런 감각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되는 게 보통인 것 같다. 근데 나는 그 이전부터 계절에 반응한다. 비가 오기 전에 뼈 마디가 쑤시는 걸 느끼는 것과 비슷하달까?


  어쨌든 계절이 바뀌려고 하면 나는 나도 모르게 예민해져 있다. 그럴 때면 꼭 여러 감정들이 내 안에 들어 차서는 포화 상태를 이룬다. 정말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찰랑찰랑거린다. 우울함, 기쁨, 슬픔, 즐거움, 설렘, 안타까움, 섭섭함, 반가움, 외로움, 쓸쓸함, 미안함, 그밖에 등등등등등.

  그리고 계절이 미처 바뀌기도 전에 나는 부우웅 뜬다. 부우웅 떠서 오만가지 감정들 속에서 허우적댄다. 앉아 있어도 의자에서 엉덩이가 부웅! 걸을 때에도 발바닥이 지면에서 부웅! 거의 반쯤은 정신이 딴 데 나가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근데 이상한 게, 나는 그런 상황이 너무 좋다. 어딘가 간질간질하고 들뜨기도 하면서 손가락 끝이 짜릿짜릿하고 뒷골이 쏙쏙 땡기고 코뼈가 시큰하게 시리기도 한, 그런 상황. 그런 상황이 너무 좋아가지고는 '한 달에 한 번씩 계절이 바뀐다면 얼마나 좋을까', 란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신기한 것 중 하나는 제법 계절의 이동이 끝나면 이런 증상이 사라진다는 거다. 마음이 변화된 계절에 익숙해졌달까. 뭐 그런 느낌이다. 나는 그렇게 익숙해지는 걸 '메마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계절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변하려고 막 옴작옴작거릴 때에는 감정들이 흘러 넘쳐서 마음을 흥건하게 적시는데, 그런 변화 과정이 모두 끝나고 나면 마음에 흘러넘치던 감정들이 어디론가 다 새어나가 버리고 없어지기 때문이다.


  아 뭐, 여튼. 난 요즘 메말랐다. 아주 푸석푸석하다. 마음에 반응이 없는 걸 보니, 여름에서 가을로의 변태 과정은 모두 끝난 것 같고, 겨울도 오려면 아직 먼 것 같다. 난 이제 겨울을 기다려야 하는데 요즘 드는 생각이, 나 왠지 바스라질 것 같다는 생각. 바스러지면 이후에 차오를 감정들 어떻게 찰랑찰랑 담아두지? 이렇게 나는 말라비틀어진 서른 한 살이 되어가나? 이왕이면 축축한 서른 한 살이고 싶은데.

  마르고 갈라 터지기 전에 겨울이나 빨리 왔으면 좋겠다. 아, 그러고 보니 이 얘기가 하고 싶었던 거였나 보다. 겨울. 올 테면 빨리 와랑.



+ ㄴ 거, ㄴ 게, ㄴ 것, ㄹ 거, ㄹ 게, ㄹ 것 , ~ㄴ/ㄹ 것 같, 오늘 요것들 많아 썼다. 진짜 안 좋은 건데.

+ 난 이제 가을 다 탔나 봐. 에이 재미없어.

+ 외로움 하나 남은 것 같다. 없애지 말고 즐겨야겠어.

+ 확실히 좀 내가 변태적이긴 하구나. 애들이 없는 말 지어내는 건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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