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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로그/My Anthology

채변 봉투 1

by 오후 세 시 2010. 11. 19.
국민학교 3학년 때
마당에 신문지를 깔고
온힘을 다해 똥을 누는데
우리집 백구가 다가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끈한 내 똥을
나오는 족족 게걸스레 먹어치웠다.

순수혈통인 줄 알았던 우리집 백구는 완전 똥개 새끼였었나 보다.
그 개새끼는 내가 힘들게 눈 똥을 먹어치우고는 쩝쩝 입맛까지 다셨다.
그리고는 다음에 나올 똥을 기대하는 눈치로 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쪼그리고 앉은 나는
다시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등 뒤로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내 똥 먹지 말라고,
채변 봉투에 담아가야 할 똥이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내질렀다.

다음날, 빈 채변 봉투를 가져간 나는
어제 우리집 개새끼가 내 똥을 다 먹어치웠다며
짝에게 똥 좀 나눠달라고 수치스럽게 속삭였다.



初 : 2010. 11. 19.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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