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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로그/My Anthology

Rain Shower

by 오후 세 시 2012. 4. 5.
  이렇게 하늘이 흐렸던 날, 도서관 밖을 나서려는데 차가운 것이 정수리에 떨어졌었다. 가슴 앞으로 바른손을 펼쳐 내밀었더니 성기게 떨어지는 빗방울이 느껴졌고, 이윽고 빗방울은 굵은 빗줄기가 되어 내 시야를 가로막았다. 몇몇 사람은 양손으로 손가리갤 하고 잰걸음으로 빗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나 바깥으로 나서려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하나 둘 도서관 처마 밑으로 모여들었다. 다들 우산이 없었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내리는 갑작스러운 비.

  그때 내 옆에 당신이 왔었다. 당신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비가 쏟아지는 걸 바라보다 휴대폰을 들여다 보다 하며 어쩔 줄 몰라 했었지. 비는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고, 바닥에 부딪힌 빗줄기들은 무수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우리의 발을 적시기 시작했었다. 신발이 젖을 것 같아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서려다가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서 있기로 했다. 내 옆에서 당신이 허둥대고 있었고, 아마도 나는 그때 그런 당신을 혼자 두고 싶지 않았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처마 깊숙이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만 그렇게 처마 밑 경계선에 섰었다. 예고 없는 비가 그렇게 자욱히 내렸다. 그리고 그때, 내 옆의 당신도 어떤 예고도 없이 그렇게 내 마음에 내려와 앉았었다. 국지적 게릴라성 호우는 그렇게 몇 분을 퍼붓다 멈췄다. 비가 그치자 당신은 투명한 물살을 일으키며 앞으로 달려 나갔었다. 그리고 나는 시야에서 당신이 사라질 때까지 당신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었다.

  당신이 밟고 가며 그려낸 빗물 위의 동심원들이 사라지기 전에 처마 밑에 깊숙이 들어가 있던 사람들도 천천히 제 갈 길을 잡으며 바깥으로 나섰다. 고인 빗물 위에는 무수한 동심원들이 겹치며 피어올랐다. 당신이 잠깐 내려앉았다 떠난 내 마음의 한자리에도 동심원이 피어올랐었다. 당신을 뒤따라가야 했던 것이 아니었는지 후회했었지만, 대신 나는 숍에 가서 우산을 샀다. 당신의 아련한 뒷모습이 내 맘에서 사라지기 전에, 내 맘에 동그랗게 그려진 파문이 지워지기 전에, 비 오는 날 당신을 한 번 더 볼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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