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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로그/씽크어바웃

댓글이 의무적인 때가 있었다

by 오후 세 시 2011. 3. 28.
  댓글이 의무적인 때가 있었다. 블로그 상에서 인맥을 늘리기 위해서, 알고 지내게 된 블로거가 새로운 포스트를 올리면, 포스트의 내용에 상관없이 댓글을 다는 식이었다. 내가 관심없는 포스트에도,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포스트에도, 예의를 차린 댓글을 달곤 했다. 이를테면, "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라든가, "많은 걸 생각하게 해 주네요", 혹은 "좋은 포스트 잘 읽고 갑니다" 따위의 댓글들이었다. 중요한 알맹이는 빠져 있고 보기좋게 꾸며놓은 껍데기 뿐인 댓글이었다. 이렇게 알고 지내게 된 블로거들에게 형식적인 댓글을 달면, 똑같이 의무적인 댓글들이 내게로 돌아왔다. 그렇게 내가 올린 포스트에도 댓글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당시엔 좋은 블로거보다는 잘 나가는 블로거가 되고 싶었다. 내가 작성한 하나의 포스트에 수십개의 댓글이 달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다. 댓글만 의무적이었던 게 아니다. 트랙백과 방명록, 심지어 링크까지도 의무적이었다. 그래서 별 관심 없는 블로그에도, 나와 맞지 않는 블로그에도 자주 드나들었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그런 내 모습이 가식적이란 걸 느끼기 시작했다. 소통, 소통. 당시는 소통이란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였다. 헌데 내가 하는 소통은 진짜 소통이 아니었다. 그냥 모든 게 의무감이었다. 그땐 내가 댓글을 단 포스트의 주인이 내 블로그에 와서 댓글을 달아주지 않으면 소통할 줄 모르는 블로거라고 비난했었다. 트랙백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보니 정말 내 포스트를 읽고 마음이 움직여 댓글을 쓰는 사람이 누군지를 알 수 없게 됐다. 내 포스트에 달린 댓글들은, 내가 날리고 온 댓글처럼 껍데기인 경우가 허다했다. 그렇게 의무적인 댓글, 트랙백, 방문자수를 쌓아 올리다가 어느 땐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블로그 리뉴얼을 생각했다. 그리고 블로그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블로그 리뉴얼. 지금 이 시기가 바로 내 블로그의 현실이다. 예전의 블로그에 비하면 방문자 수도 댓글도 현격히 줄었다. 하지만 대신에 좀 더 정직한 블로그가 됐다. 후회가 좀 되는 게 있다면, 그 중 정말 좋은 블로그 이웃들을 잃었다는 점과 소중하게 여기던 몇 개의 댓글들, 트랙백들을 잃었다는 점이다. 좀 더 나에게 정직해지기 위해서는 아픔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내 마음을 움직이는 포스트에만 댓글을 달기로 결심했다. 리뉴얼 이후 쭉 그래오고 있는 중이다. 댓글을 반드시 주고받아야 한다는 의무감은 버렸다. 따라서 내가 준 댓글에 댓댓글만 달려도 만족하게 됐다. 내가 댓글을 단 포스트의 주인이 내 댓글에 반드시 댓댓글을 달 필요는 없다. 그리고 굳이 형식적으로 내 블로그를 방문할 필요도 없다. 내 포스트에 댓글이 달리지 않는 건 일면으로는 당연한 거라는 점도 인정하게 됐다. 애초에 이 블로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 아니었던가.

  바뀐 나는 요즘 가끔 블로그를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의무적 댓글을 본다. 깊이와 느낌이 투영되지 못한 황폐한 의무의 댓글들. 당연히 의무적인 댓글에 달리는 댓댓글들은 댓글들처럼 의무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좋은 포스트 잘 읽고 가요~"라는 댓글에는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정도의 댓댓글로만 반응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메마른 거짓 소통! 진심을 다하지 않은 그 엉성한 관계를 바라보는 일은 아직도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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