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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로그/씽크어바웃

고맙다는 말

by 오후 세 시 2010. 9. 17.

 그가 고맙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이유는 부채감을 안고 있으려는 그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고맙다는 말 한 마디로 모든 걸 갚았고, 할 거 다 해줬다고 생각하면서 그 고마움을 쉽게 잊기 때문이라고 한다. 굳이 세 번째 이유라면 그는 쑥쓰러움을 잘 타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네 번째 이유로 그는 '고마움'의 희소 가치를 위해 고맙다는 말을 남겨두는 것이라고도 했다.

 내가 오늘 그에게 '고맙다'라는 말을 입에 붙여 보라고 말한 것은, 그가 마음에서 이는 감정을 바깥으로 잘 표출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구구절절한 변명을 잘 듣긴 했지만, 그가 고맙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 것에는 여전히 불만이다.

 나는 그가 '고마움'에 부채감을 안고 살아간다는 게 도통 이해가 안된다. 고마운 상대에게 부채감을 굳이 느끼려는 이유를 모르겠다. 물론 어떤 이가 자신에게 돌아올 실(失)을 감수하면서도 온정을 베풀었다면 그 고마움에는 부채감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고마움에 부채감이 딸려 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부채감을 안고 살아가려는 것이 그의 개인적인 사정이기 때문에 정도를 넘어서면서까지 그의 개인사를 후벼파려고 하진 않았지만, 그 얼토당토 않는 부채감이 언젠가는 그에게 독으로 작용할 때가 올 것만 같다. 그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마음에 혀뿌리까지 올라온 말을 애써 집어삼켰지만, 나는 그가 기왕에 부채감을 안고 살아갈 것이라면, '고맙다'라는 말을 하고 난 다음에 그 부채감을 떠안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세 글자로 된 그 한 마디가 얼마나 커다란 재산이 되는지 그는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은 고맙다는 말 한 마디로 '갚았어 내가 할 거 다 해줬어'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마움'은 꿔 준 돈이 아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고맙다'는 말을 그가 모를 리 없을진대, 어째서 그것을 갚는다는 방식으로 생각할 수가 있었던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고마운 감정을 느끼는 순간은 참으로 많다. 그러나 우리는 그 순간순간을 모두 기억하며 살 순 없다. 고마운 매 순간마다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것은 모든 순간을 기억하며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순간을 기억할 수 없다면, 고마울 때 고맙다고 말하지 않고 그 '고마움'을 부채감처럼 떠 안고 가는 것보다야 고마울 때 고맙다고 말하는 게 외려 낫지 않을까. 더군다나 쏟아지는 사건들로 인해 며칠 전 일도 가물가물해지는 요즘 시대에 '고마웠던 일'을 모두 기억이나 할 순 있을지 의문이다. 미리 말해두지 못했다가 기억 속에서 영영 잊혀져 버린 '고마운 순간'에 대해선 어떻게 할 것인가. 그의 식대로 표현하면, 그 고마움은 끝끝내 갚지 못할 게 뻔하다.

 그가 쑥쓰러워서 고맙다는 말을 못하겠다는 건 핑계고 자기 방어이다. 과연 그는 입술 끝에서 맴돌던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 위해 노력이나 해 본 적은 있을지 궁금하다. 고마운 순간에 고맙다는 말이 입술 끝에 맴돌기나 했었는지도. '고', '맙', '다' 이 세 글자가, 입술을 딱 세 번만 옴작거리면 할 수 있는 이 한 마디가, 뭐가 그리 어렵단 말인지. 입 안에 밥 한 숟가락 떠 넣는 것보다 '고맙다'는 말 한 마디가 쉬우면 쉬웠지 어렵진 않을 것이다. 밥 한 숟가락은 자신의 위장에 깜찍한 기별 정도 주겠지만, 그보다 쉬운 '고맙다'는 말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상대의 마음을 끝없이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 그가 그걸 모른다는 게 안타깝다. 혹 그가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면,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저런 변명 갖다 붙인다는 게 더더욱 안타깝다.

 그가 말하는 '고마움'의 희소 가치에서 나는 베푸는 '고마움'의 경중을 느낀다. 그가 말하기를, "정말 고마울 때 고맙다고 말하면, 희소성 있는 한 마디로 깊이있는 고마움을 표할 수 있다"고 한다. 그에게는 정말 고마울 때가 있고, 그냥 고마울 때가 있고, 그럭저럭 고마울 때가 있는가 보다. 아마도 그것이 다른 사람이 그에게 베푸는 '고마움'의 경중일 것이고, 그는 그 중에서 정말 고마울 때에만 고맙다고 말을 함으로써 '고마움'을 베푼 이에게 '고마움'의 희소 가치를 느끼게 하려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베푸는 '고마움'에는 경중이 없다. '고마움'이란 그냥 마음이다. 계산하고 수량화하고 경중을 따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고마움'을 '재는' 순간 '고마움'은 고마움이 아니게 된다. 그런 고마움은 '빚'으로만 남을 것이다.

 그가 내게 '고맙다'는 말을 하기 어려워하는 여러가지 이유를 댄 것이 어쩌면 그의 솔직한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그의 솔직한 마음이라면 더더욱 나는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고마울 때 고맙다고 말하지 못하면 영영 그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은 제 때에 바로바로 해야 한다. 밥은 제 때에 꼬박꼬박 챙겨먹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쟁여놓는다는 그의 논리는 그냥 달콤한 레몬의 합리화같은 것이다. 사실은 신 레몬인데도 제 입맛엔 달콤하다고 우기는. 하지만 그의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 레몬이 시디신 레몬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안다. 호의를 베푼 뒤 눈빛을 마주쳤는데도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안 하는 그가 자린고비처럼 보일 테니까. 그가 그런 사실을 언제쯤 알게 될까. 다른 사람들이 그를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는 걸, 그가 조금이라도 알기는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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