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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로그/씽크어바웃

by 오후 세 시 2009. 4. 23.

활짝 피어있는 꽃을 본다. 수줍은 듯 겸손하게, 그러면서도 자신있게 피어있는 꽃을. 절정에 다다른다는 것은 그런 것! 하지만 절정이란 오고 나면, 갈 채비를 한다. 어린 시절이 그러하고, 청춘이 그러하고, 아름다운 시절이 그러하듯. 시간과 세월이 누군가를 위해 멈춰주지 않듯.

  절정에 오른 꽃은 그래서 떨어지는 것이다. 시간과 세월이 꽃을 위해 멈춰주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아름다웠던 시절이 모두 지나갔기 때문에. 그래서 떨어지는 꽃을 보면, 영원히 절정에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형기는 이렇게 노래했다.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쌓여 지금은 가야할 때'이지만, '청춘은 무성한 녹음과 머지않아 열매맺을 가을을 향하여 꽃답게 죽는다'고. 그의 시를 읽으면서 다시 알게 된다. 영원히 절정에 있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언제든 또 다시 절정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다시 꽃을 본다. 막 피어나기 시작한 꽃과 아직 피어있는 꽃과 이미 떨어진 꽃을. 가만히 들여다 본다. 꽃 속 깊숙한 곳까지. 빛도 있고, 그림자도 있다. 그리고 거기에 짙푸른 녹음이 있고, 알찬 열매들이 있고, 물든 잎사귀들이 있고, 눈덮인 앙상한 가지가 있고, 돋아나는 새싹이 있는 것을 본다. 그래, 거기 영원한 절정은 없지만, 수많은 절정들이 있다. 시간과 세월은 흐르고 아름다운 시절은 지금도 지나가지만, 아름다운 시절은 또 언제든지 오는 것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면, 순간순간이 절정이다. 피어나는 순간, 피어있는 순간, 떨어지는 순간, 모든 순간순간이.

  활짝 피어있는 꽃을 본다. 영원히 그렇게 절정일 수 있다면, 꽃이 그렇게 아름다워 보였을까? 이제 곧 절정을 지나 꽃은 질 것이다. 그렇기에 꽃은 아름다운 것이겠지. 하지만 지는 그 순간 꽃은, 지는 것으로써 다시 한 번 절정에 다다를 것이다. 그 또한 아름답다. 계속해서 꽃이 지는 일은 없기 때문에. 시간과 세월은 흐르고, 아름다운 시절은 오고 가고 또 온다.

  그러니 활짝 피지 않았다고, 활짝 피었던 시절이 다 지나갔다고, 눈물 머금지 말기를. 꽃은 언젠가는 진다. 절정으로부터 멀어지는 것. 그렇다고 절망은 아니다. 빛과 그림자 속에서 절정은 또 교차하며 오는 것이니까. 언제든 다시 찾아오는 것이니까. 순간순간일 만큼 아주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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