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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로그/씽크어바웃

오후 한때의 꽃내음을 아련히 추억하며

by 오후 세 시 2009. 4. 9.

#.01 매일 이별하고 살고 있구나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을 살면서 많은 것들을 잃어간다. 김광석 식대로 이야기하자면 내 주변에 있는 것들과 매순간 이별하는 셈이다.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면 내가 느낀 감정들과 내가 본 풍경들과, 내가 들었던 소리들과, 내게 닿았던 모든 촉감들을 잃어가가는 것이다. 그것을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느꼈던 설렘, 기쁨, 슬픔, 내가 보았던 거리의 풍경과 그들의 모습, 내가 들었던 공연장의 음악 소리와 그 혹은 그녀의 목소리, 내게 불었던 바람과 내 발목을 적셨던 바닷물의 감촉을 잃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깡그리 모아 놓으면 우리는 우리를 존재하게 했던 지난 모든 시간들과 이별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누구나 이 이별의 숙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우리는 김광석의 노랫말처럼 모든 순간들과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02. 밀려드는 후회

  시간은 지나가면 그 뿐이다. 우리는 그저 그 시간을 추억할 뿐이다. 김영랑 시인도 시 속에서,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이라며 삼백 예순 날을 하냥 섭섭해 울었다. 추억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지만, 우리는 지나가 버린 그 시간에 대해서 김영랑 시인이 느꼈던 것처럼 섭섭함을 느끼는 수밖엔 별 도리가 없다. 떠나고 돌아오지 않는 애인처럼 시간은 영영 떠나버린 채 결코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곧잘 후회를 한다.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이라고. 하지만 지난 시간들을 미처 되돌릴 틈도 없는데, 다가올 시간들은 앞에서부터 급하게 밀물쳐 들어온다. 때문에 후회는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03. 시간의 흐름을 거역하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사람들이 시간을 거역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시간에 대해 후회를 하던 바로 그때부터. 카메라와 녹음기와 비디오 카메라, 이런 기계들이 지난 시간 속에 존재했던 것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기 시작했다. 카메라는 한정된 공간의 모습을, 녹음기는 일정한 시간 내의 소리를, 그리고 비디오 카메라는 공간 속의 움직임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흐르는 시간 자체를 정지시킬 수는 없었지만 한때의 시간을 그 시간 그대로 온전하게 남겨둘 수는 있게 되었다. 그리고 더 온전히 그때를 추억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시간을 거슬러 되돌아갈 수는 없었지만, 흘러가는 시간을 거역함으로써 인화지 위에, 녹음 파일과 비디오 파일 안에 그 시간들을 담아둘 수는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 그것만으로도 그때를 추억하기엔 충분하다.


#04. 그럼에도 거역할 수 없는……

그 때 느꼈던 그 느낌들을 고스란히 다시 전달받을 수만 있다면,
조금은 위안이 될텐데.

  사진을 보고, 녹음기를 틀고, 비디오 테이프를 재생시키며 우리는 웃고, 울고, 추억하며 위안을 삼는다.

  다시 돌아갈 수 없대도 괜찮아.   이렇게 그 때의 감정으로 그 때를 추억할 수만 있다면.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도 있다. 인화지 위에 인화될 수 없는 것, 녹음 파일 안에 저장될 수 없고, 비디오 파일 안에 남겨질 수 없는 것. 그루누이는 그것을 기억하고 간직하기 위해 향수를 만들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그루누이가 만든 향수에서 느낄 수 있는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그것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제 자리를 떠나 물이라는 액체 속에 용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것은 바로 향기다. 꽃향기는 꽃에서 맡을 때 진정 꽃향기라고 할 수 있다. 풀내음은 풀밭에서 맡아야만 진정 풀내음이라고 할 수 있고. 어느날 저녁, 그 저녁의 향기를 맡았다면, 그 저녁의 향기는 그 시간 속에서만 진정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물 속에 용해되거나 종이 위에 묻어있는 향기는 제 자리를 떠난  향기이므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향기가 될 수 없다.


#05. 어떤 추억 

  어느 봄날 오후에 넘실대는 봄바람을 타고 교실 창문을 넘어 들어와 졸린 내 코 끝을 간지럽히던 아카시아꽃내음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렇게 떠올린 기억과 추억은 아련할 뿐 온전히 남아있을 순 없다. 그때 그 꽃내음이 전해지던 교실의 풍경과, 봄바람에 흔들리던 교실 창문의 커튼과 칠판에 부딪히던 선생님의 분필 소리는 사진이나, 비디오 파일로 온전하게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카시아꽃내음만큼은 그 무엇으로도 온전히 남길 수 없었을 것이다.


#06. 아련하게 추억하다 

  그래서 어떤 추억은 아련하게만 추억해야 한다. 예전의 그때 그대로 남겨질 수 없다면 더는 온전할 수 없는 추억이기 때문이다. 온전히 남길 수 없기에 향기의 추억은 더욱 더 애틋한가 보다.

  오늘 바깥 나들이를 나갔다. 꽃들이 사방천지에 흐드러지게도 피었더라. 백목련, 자목련은 벌어질대로 벌어져 나뭇가지를 휘청이게 하고 있었다. 산수유꽃, 진달래꽃, 개나리꽃들도 나른한 봄 한나절을 점점이 수놓았다. 벚나무꽃, 자두나무꽃들은 하얗게 튀어오르는 팝콘들처럼 하나둘씩 허공 위에 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바람이 불었다. 상쾌하고 달콤한 바람. 그건 다름 아니라 꽃향기를 가득 머금은 꽃바람이었다. 그 시간 이후로는 그대로 남겨질 수 없기에 아련하고 애틋하게 추억해야만 할, 그런, 봄날의 꽃바람이었다.


#07. 추신 

  생각이 많아지던 봄날, 영원히 남기고팠던 오후 한때의 꽃내음을 아련히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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