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박민규의 소설집 <더블>을 읽고 있다. 책장을 넘기며, 문자들을 읽어 나가며 내내 생각한다. 이 소설집을 사 들고, 마침 교보문고에 사인회를 하러 온 박민규 앞에 서서, 소설집을 내어밀며, 내 이름을 댔을, 그 순간을. 아마도 그때 그녀는 박민규가 사인을 해서 건네주는 이 소설집을 받아들면서, 기뻐할 내 모습을 떠올리곤 뿌듯해 했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녀의 크리스마스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나는 그녀를 위해 케이크를 준비하지도 않았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크리스마스 카드 한 장도 써서 건네질 않았다. 그녀는 크리스마스를 위해 영화표를 예매하고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고민했다. 점심식사 후에는 그곳에서 할인되지 않는 신용카드를 꺼내드는 나를 만류하고 할인이 되는 자신의 신용카드로 계산까지 했다. 도대체 내가 그녀에게 해 준 것은 무엇이었나. 그녀는 아마 그것으로 인해 태어나서 가장 행복하지 못한 크리스마스를 보냈을 것이다.
나는 해명을 하려 했지만 그것이 그녀와 나의 관계에 어떤 이득도 되지 못할 것이란 걸 깨닫고 그걸 포기했다. 그냥 바보 새끼나 못난 새끼, 나쁜 새끼로 남는 게 편할 듯하기도 했다. 변명이나 하는 찌질한 새끼보다는 차라리 그게 낫다고 생각했다. 이미 망쳐진 크리스마스 분위기에서 나의 해명은 변명이 될 게 뻔했다. 그녀를 위해 크리스마스 카드를 골라 사두었고 어떤 선물을 해야 할까 고민하지 않았던 게 아니란 건 사실이었지만, 그녀에게 그건 대기 쉬운 뻔한 거짓말에 불과했을 것이다. 할머니께서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셨고, 간병을 해야 했고, 밤을 샜고, 막내 이모네 집에 애들을 보러 갔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크리스마스 카드에 적으려 했던 많은 말들은 정작 쓸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빠 쓰지 못했고, 선물 사러 갈 시간은 도무지 나질 않았고, 선물을 해 주면 또 그걸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점심과 저녁은 멋드러진 걸로다가 사려고 했는데 정작 핀잔을 들으며 점심은 사지도 못하고 저녁엔 배가 불러서 식사조차 하질 않았고. 무슨 크리스마스가 이따위로 지나간 건지.
하지만 지난 크리스마스와 이번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 같지도 않다는 그녀의 말은 조금 어이가 없긴 했다. 지난 크리스마스가 어땠는지 기억은 하고 있는 건지. 그땐 상황이 반대였었다. 나는 크리스마스 카드도 써서 줬고, 크리스마스 선물도 준비해서 그녀에게 건넸다. 아무것도 받지 못한 난 그때 조금은 서운했지만, 그녀와 함께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래서 어떤 서운함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올 봄에 내가 지난 크리스마스 선물로 건네준 목도리를 잃어버렸다. 나는 내가 준 선물을 얼마나 소홀히 대했으면 잃어버리고도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일까라는 노파심이 들었지만, 그것에 대해서도 전혀 서운한 기색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크리스마스나 이번 크리스마스나 다른 게 없다니. 지나칠 정도로 서운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종일 함께 있던 동안 그녀는 이번 크리스마스 때만큼이나 엉망진창이었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녀가 지난 크리스마스 때를 기억이나 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기억하고 있다면 적어도 내게 "나를 좋아하기는 하는 거야?"라고 묻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잘했다는 건 아니다. 그래서 지금 난 그녀가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박민규의 소설집을 읽으며 최대한 불편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락이 없다, 그녀에게서. 나도 별로 연락하고 싶지 않다. 지금 연락해도 당장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다. 그녀에게 연락해서 이러저러해서 내가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고, 무릎이라도 꿇겠다고, 이야기해봤자, 달라질 게 없을 거란 걸 안다. 시간이 흘러야 마음이 누그러진다는 걸 안다. 내가 잘했다는 게 아니다. 나도 그녀에게 잘못했고, 어느 정도는 그녀도 내게 잘못을 했다. 이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안된다. 나도 더 이상 내 상처를 혼자 감싸안고 비굴하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짓은 못하겠다. 땅바닥까지 엎드려서 그녀의 눈치나 살피는 짓거리는 더이상. 그러니 차라리 못나고 못돼빠진 새끼가 되겠다. 그게 낫다.
그러고 사흘이 지났다. 미안하지 않은 건 아니다. 미안하다. 다만 나의 상황을 길게 설명하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지고, 그걸 좀 알아줬으면 하는 내 바람이 속좁게 느껴져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미안해 하는 것조차 이제는 지친다. 나도 힘이 든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녀의 크리스마스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나는 그녀를 위해 케이크를 준비하지도 않았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크리스마스 카드 한 장도 써서 건네질 않았다. 그녀는 크리스마스를 위해 영화표를 예매하고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고민했다. 점심식사 후에는 그곳에서 할인되지 않는 신용카드를 꺼내드는 나를 만류하고 할인이 되는 자신의 신용카드로 계산까지 했다. 도대체 내가 그녀에게 해 준 것은 무엇이었나. 그녀는 아마 그것으로 인해 태어나서 가장 행복하지 못한 크리스마스를 보냈을 것이다.
나는 해명을 하려 했지만 그것이 그녀와 나의 관계에 어떤 이득도 되지 못할 것이란 걸 깨닫고 그걸 포기했다. 그냥 바보 새끼나 못난 새끼, 나쁜 새끼로 남는 게 편할 듯하기도 했다. 변명이나 하는 찌질한 새끼보다는 차라리 그게 낫다고 생각했다. 이미 망쳐진 크리스마스 분위기에서 나의 해명은 변명이 될 게 뻔했다. 그녀를 위해 크리스마스 카드를 골라 사두었고 어떤 선물을 해야 할까 고민하지 않았던 게 아니란 건 사실이었지만, 그녀에게 그건 대기 쉬운 뻔한 거짓말에 불과했을 것이다. 할머니께서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셨고, 간병을 해야 했고, 밤을 샜고, 막내 이모네 집에 애들을 보러 갔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크리스마스 카드에 적으려 했던 많은 말들은 정작 쓸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빠 쓰지 못했고, 선물 사러 갈 시간은 도무지 나질 않았고, 선물을 해 주면 또 그걸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래서 점심과 저녁은 멋드러진 걸로다가 사려고 했는데 정작 핀잔을 들으며 점심은 사지도 못하고 저녁엔 배가 불러서 식사조차 하질 않았고. 무슨 크리스마스가 이따위로 지나간 건지.
하지만 지난 크리스마스와 이번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 같지도 않다는 그녀의 말은 조금 어이가 없긴 했다. 지난 크리스마스가 어땠는지 기억은 하고 있는 건지. 그땐 상황이 반대였었다. 나는 크리스마스 카드도 써서 줬고, 크리스마스 선물도 준비해서 그녀에게 건넸다. 아무것도 받지 못한 난 그때 조금은 서운했지만, 그녀와 함께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그래서 어떤 서운함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올 봄에 내가 지난 크리스마스 선물로 건네준 목도리를 잃어버렸다. 나는 내가 준 선물을 얼마나 소홀히 대했으면 잃어버리고도 찾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일까라는 노파심이 들었지만, 그것에 대해서도 전혀 서운한 기색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크리스마스나 이번 크리스마스나 다른 게 없다니. 지나칠 정도로 서운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종일 함께 있던 동안 그녀는 이번 크리스마스 때만큼이나 엉망진창이었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녀가 지난 크리스마스 때를 기억이나 하고 있는 건지 궁금했다. 기억하고 있다면 적어도 내게 "나를 좋아하기는 하는 거야?"라고 묻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잘했다는 건 아니다. 그래서 지금 난 그녀가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박민규의 소설집을 읽으며 최대한 불편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락이 없다, 그녀에게서. 나도 별로 연락하고 싶지 않다. 지금 연락해도 당장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다. 그녀에게 연락해서 이러저러해서 내가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고, 무릎이라도 꿇겠다고, 이야기해봤자, 달라질 게 없을 거란 걸 안다. 시간이 흘러야 마음이 누그러진다는 걸 안다. 내가 잘했다는 게 아니다. 나도 그녀에게 잘못했고, 어느 정도는 그녀도 내게 잘못을 했다. 이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안된다. 나도 더 이상 내 상처를 혼자 감싸안고 비굴하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짓은 못하겠다. 땅바닥까지 엎드려서 그녀의 눈치나 살피는 짓거리는 더이상. 그러니 차라리 못나고 못돼빠진 새끼가 되겠다. 그게 낫다.
그러고 사흘이 지났다. 미안하지 않은 건 아니다. 미안하다. 다만 나의 상황을 길게 설명하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지고, 그걸 좀 알아줬으면 하는 내 바람이 속좁게 느껴져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일 뿐이다. 미안해 하는 것조차 이제는 지친다. 나도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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