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두통
느즈막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얼굴을 씻고 옷을 꿰어 입고 책으로 가방을 채워 밖으로 나온다. 머리에 진득하니 눌러앉아 있다가 신경조직을 긁으며 스물스물 눈꺼풀로 내려오는 두통. 입 안 가득 괴어 양치질로도 잘 가시지 않는 농밀한 카페인의 진득진득함처럼 두통은 바깥 바람에도 쉬 가시질 않는다. 미용실로 가 머리카락을 자른다. 머리카락을 자르면 머리카락에 들러붙은 통증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든다.
2. 흔들림
머리를 자르고 나와 도서관 가는 뻐스를 탄다. 도서관까지는 대략 일곱 정거장. 뻐스가 출발하자 바깥 풍경이 차거운 봄바람에 흔들거린다. 뻐스도 흔들거린다. 나도 흔들거린다. 뻐스 기사도 뻐스를 탄 손님도 인도를 활보하는 행인들도 포장된 도로도 건물들도 가로수도 그것들과 연결된 모든 기억들도 모두 덜컹덜컹 흔들린다.
그러나 모두들 흔들리고 있다는 걸 모른다. 어쩌면 도리어 그게 나을는지 모른다. 그걸 알면 비틀거리며 앞으로 다가서는 우울과 마주해야 할 테니까. 그렇게 우울과 마주하게 되면 느닷없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온갖 변명들을 늘어놓으려 할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 지경에 이르는 게 싫어서 흔들림에 취해가는 것인지 모른다. 그러하니 그들은 자신이,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제 각각의 삶들이, 그리고 그것들을 겹겹이 싸고 있는 온 우주가 차거운 봄바람 한 줄기에 이리 저리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영영 깨닫지 않으려 하거나 깨닫지 못한다.
3. 내 사랑이 흔들린다
나는 안다.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슬프지만, 그래서 내 사랑도 흔들리고 있는 것일 테다. 사랑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내가 알게 됐다는, 이 모든 불행의 근원은 차거운 봄바람에게 있다. 아니 어쩌면 사랑이 흔들린다는 사실 때문에 모든 것이 흔들린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 때문에 봄바람이 차겁다고 느끼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4. 합리화
도서관 근처의 서점에서 백석 시집을 산다. 백석과 나타샤와 흰 당나귀. 합리화는 슬픈 행위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거기엔 새롭게 비져나오는 힘이 있다. 새롭게 비져나오는 백석과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슬픈 힘. 그건 아마도 세상을 살아나가게 하는 힘일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합리화하기로 한다. 흔들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그리고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도서관 열람실 책상에 앉아 책을 펼쳐든다. 그리고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혹 흔들린다 하더라도 그건 그저 나를 살아가게 하는 미약한 원동력으로만 작용할 뿐, 내 삶을 획기적으로 뒤집어 엎는 무엇인가는 되지 못할 것이다.' 라는 식의 변명을 뇌까려 본다. 이런 변명은 스스로의 합리화라는 점에서는 슬프지만, 닥친 현실을 그래도 괜찮은 것으로 미화시킨다는 점에서는 나쁘지 않다. 그런 미화 작용이 바로 우울한 세상을 살아나가게 만드는 힘이다. 어쨌든 모든 행위는 합리화의 산물이다. 설령 그것이 정당성을 확보한 상태라 하더라도.
6. 합리화에 대한 합리화
사랑이 흔들리자 두통이 왔다. 머리에 온 통증. 그것보다 더 한 건 심장 박동수를 늘리며 가슴에 드리운 정체모를 불안함이다. 사랑이 흔들리자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나는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고. 혹은 흔들렸다 하더라도 그건 그저 성장을 위한 과정일 뿐이라고. 모든 것은 흔들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그렇게 변명하니, 제법 그럴 듯해 보인다. 두통도 사라지고 불안함도 가시는 것 같다.
7. 질서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하루.
그러나 나의 합리화로 날 둘러싼 모든 건 억지스런 질서를 되찾을 것이다.
오직 나를 제외하고는.
8. 미안해
그래서 한편, 내 스스로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그리고 아무 죄없는 차거운 봄바람과 나 스스로 흔들어 댄 내 사랑에게도.
3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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