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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의 네가 기억할는지 모르겠다. 열 여섯 살의 네가 비 오는 날 내게 적어 보낸 편지에, 이런 날은 센치해진다고 비처럼 잔잔히 읊조렸던 것을. 그 이후로 창가에 빗방울이 빼곡히 듣기 시작하면, 나는 이유없이 센치해진 마음으로, 열 여섯 살의 너를, 열 여덟 살의 너를, 그리고 스무 살, 또 서른 살의 너를, 가만히 떠올리곤 했다. 그래서 열 여섯 살 이후로 내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너는 어디에든 있었다.
바람이 구름을 밀어 오고 잎사귀들이 조용히 일렁이면, 그리고 쌀알처럼 빗방울이 하얗게 흩어지며 쏟아지기 시작하면, 내 마음은 충만에 달뜨기도 하고 빈곤에 허덕이기도 하며 너와 나 사이의 뵈지 않는 간격을 오랫동안 가늠해 봤다. 센치해진 마음으로 떠올리는 '너'는 여백 위에 수성펜으로 써놓은 글자 같아서 금새 빗물 속으로 번져 들어가 흔적없이 사라졌다. 그런 이유로 너는 어디에든 있었지만 또한 어디에도 없었다.
가득 채워졌다가 깡그리 비워짐을 체감하는 일은 언제나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도 비가 오면 늘, 그렇게 가득 채워졌다가 밑끝없이 비워져야만 했다. 그래서, 였을까? 내가 들은 절반의 빗소리는 대개, 창울하게 귓가를 적시다간 이내 증발되어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
비가 내리면. 발끝까지 짜릿하게 전해지는 희열, 과 짓궂게 콧등을 쥐고 비트는 슬픔이 비의 리듬에 따라 있음과 없음, 가까움과 멈, 회상과 상실로 변주되며 센티멘털함 속을 뛰논다. 그렇게 언제나 환영의 너는 거짓으로 떠올라 명랑하게 춤을 추고, 실재의 너는 보이지 않는 먼 곳에 묵직하게 잠겨만 있다. 그 사이의 잴 수 없는 간격과 그 간격을 가늠했던 인생 절반의 시간은 복잡하게 엉기고 얽혀 풀 수 없는 숙제로,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빈 공백 위에 아슴하고도 분명하게 남아, 자꾸만 너를 찾고 또 찾는다. 알까. 서른 살의 너는. 비가 내리면 이유없이 센치해진 마음으로 모든 감정들을 그러모아 너를 떠올리는 나를. 혹 열 여섯 살의 오래 전 그때를 기억이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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