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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 C
"불륜"이라는 단어가 시선을 끌었다. 요즘 한창 잘 나가고 있는 단어이기 때문에. 최근 몇 년간 각종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단어들 중 하나가 바로 이 단어가 아닌가. 최고의 시청률을 구가하고 있는 드라마 ≪아내의 유혹≫도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는 드라마다. 뿐만이 아니라, 소설에서도 불륜은 오래 전부터 자주 애용되던 소재였다. 영화는 어떠한가? 온 가족이 바람을 피우는 막장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바람난 가족≫, 바람을 피우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를 유쾌하게 그려냈던 ≪바람 피기 좋은 날≫, "난 투톱 시스템이야'라며 주인아의 불륜을 결혼으로 아름답게 승화시켰던 ≪아내가 결혼했다≫.
이 정도만 봐도 불륜이라는 코드가 우리 나라 미디어 산업에서 어떤 저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굳이 이런 작품들을 구구절절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불륜이라는 소재는 잘 팔릴 수밖에 없다. 듣지 말아라, 보지 말아라, 하지 말아라. 그렇게 이야기하면 더 궁금해 하는 것이 사람들의 심리 아니던가.
요컨대, "불륜", 이 두 글자가 묘하게 시선을 잡아당겼다. 그 뒤에 "사유서"라는 단어는 '도대체 어떤 변명을 하고 싶은걸까?'라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거기다 "지구촌"이란다. 게다가 책 겉표지에는 "뉴욕에서 도쿄까지 세계인의 불륜 고백"이라는 문구까지 거창하게 박혀있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세계적 불륜의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뽑아 들었다.
본격적 이야기에 앞서 먼저 '외도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이 선행하는 것이 올바를 것 같다. 임자 있는 몸이 다른 곳을 향하게 되는 것. 이것이 외도이다. 외도에는 육체적인 외도와 정신적인 외도가 있다고는 하나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외도는 육체적인 외도(간통, 불륜, 바람을 피우는 것 등, 그것을 가리키는 용어는 많은 것 같지만)에만 한정된다.
결혼과 외도, 도덕과 양심, 비밀과 고백, 상처와 복수. 이것을 책에서 말하는 불륜의 키워드로 삼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떠올린 논쟁거리는 세 가지이다. "외도 후의 도덕적 책임과 양심의 가책은 필수적이어야 하는가?', '외도 사실은 비밀에 부쳐야 하는가, 솔직하게 고백해야 하는가?', '외도에 대해 어떻게 복수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첫 번째로 외도 이후 뒤따르는 도덕적 책임과 양심의 가책은 필수 요소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할 것 같다.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필수 요소가 당연하다라고 느끼겠지만, 이외로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다는 점이 참 특이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경우가 있다. 프랑스의 한 남성은 아내와 결혼한 뒤에도 외도를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자 아내가 변하더란다. 꾸미지도 않고 외모에 신경도 쓰지 않더라는 것. 그래서 이 남성은 아내에게 눈물로 호소를 했단다. 몸매를 관리해 달라, 하이힐을 신어주면 안되겠느냐, 펑퍼짐한 옷은 자제해 달라, 라고. 그러나 아내는 들은 척도 안 하더란다. 자신만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 남성은 조금씩 인내의 한계를 느끼게 되고 아내에게 "다른 여자를 만나도 괜찮겠느냐. 제발 내 말을 들어달라"라는 귀여운 협박까지 하게 됐단다. 그러나 아내는 남편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고 한다. 그러다 이 남성은 한 유부녀를 만나 외도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는데, 그것이 이 남성을 도덕적 혹은 양심적으로 괴롭히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은 아내에게 충실했고, 노력할 만큼 했으며 요구할 만큼 요구했다는 것이다. 글쎄. 우리나라에서라면 통할 리 만무한 변론 아닐까? 하지만 다시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결혼 생활에 충실한다는 것은 단지 돈을 잘 벌어 오고, 집안 살림을 잘 하고,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그렇다 분명 다른 것도 중요하다.
두 번째로 외도는 비밀에 부쳐야 하는가, 솔직하게 고백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겠다. 이것은 참 애매한 문제이다. 외도를 저지른 많은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깊이 고민하는 것 같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것이라는 예상이 든다. 책에서도 실제로 분분한 의견들이 제시된다. 비밀에 부치고 자신만 알면 남편이나 아내 혹은 자신의 연인은 상처받을 일이 없을 것이므로 모두를 위해 비밀에 부쳐야 한다는 의견과 관계가 끝장나더라도 솔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도덕적으로 올바르다는 의견. 뭐가 올바른 것일까? 참 난감하다. 미국의 경우는 이런 문구가 사용된 적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섹스가 아니다. 거짓말이다." 만약 이런 경우라면 솔직하게 고백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만 그 문구가 정말 진실한 문구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바로 섹스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이 때에는 비밀에 부치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을 수도 있다는 고민을 할 수도 있다. 참 어렵다, 이 문제는. 상처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솔직히 털어놔야 하고, 상처받을 것이 분명할 것 같으면 비밀에 부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정말 상처받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마지막으로 '외도에 대한 복수는 어떤 방법이 합리적인가'에 대한 문제인데, 이게 참 재미나다. 외도로 인한 상처의 치유는 대단히 어렵다고 한다. 심리치료를 받아도 이것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서 사랑하는 두 사람을 괴롭힌다고 하니 말이다. 때문에 종종 두 사람 사이에서 외도에 대한 복수가 행해진다고 한다. 외도에 대한 복수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는 것 같더라. 이혼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외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부부 간의 우위를 점해나가는 방법이 있고, 외도를 모른 척 하고 자신 또한 외도를 즐기는 방법도 있다. 이혼하고 위자료를 물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게 가장 극단적인 복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아내의 외도에 복수하는 한 프랑스 남성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이 남성은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증거를 확보한 뒤 아내로부터 외도에 대한 사실을 고백받는다. 그런데 이 아내가 그 이후로도 꾸준히 외도를 하더라는 것이다. 이 남성은 심증을 굳히고 있다가 물증이 잡히는 순간,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와 외도를 함으로써 아내에게 복수했다고 한다. 국가별로 복수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고 하니 잠깐 살펴보자. 미국의 경우는 이혼을 하거나 결혼생활을 유지한대도 외도 사실을 죽을 때까지 치부로써 가지고 감으로써 복수를 한다고 한다. 프랑스의 경우는 위의 프랑스 남성처럼 맞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복수를 한다고 한다. 외도에 대한 복수와는 상관없이 러시아의 경우는 특이하게도 "외도는 의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외도가 의무라는 말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불행한 결혼 생활을 장려하기 위한 문구가 될 것이 뻔함은 물론이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많이 해 보았는데, 외도 혹은 불륜이라는 건 당사자가 되어보기 전에는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가 껄끄러운 부분들이 상당 부분 있는 것 같다. 여기서의 당사자란 물론 외도나 불륜을 저질렀거나 그것으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을 두루 가르키는 것. 이 책에서 한국의 경우도 좀 다루어 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국의 경우는 없더라. 아시아 쪽은 대부분 중국이나 일본. 글쓴이가 그 쪽만 다녔나 보다. 하긴 우리 나라에 와서 불륜을 주제로 인터뷰한다고 하면 누가 대뜸 "내가 해 주겠소"하겠나.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참 금기시 되거나 터부시 되는 것들에 지대한 관심을 지니는 것 같다. 미디어에서 불륜이라는 코드가 여전히 그 불길을 사그러뜨리지 않는 이유도 바로 거기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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