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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로그/다이어리

2011년 9월 23일. 시간에 묻히는 시간.

by 오후 세 시 2011. 9. 24.
  '마지막'이라는 말은 아쉽고 쓸쓸하고 허전하고, 또 아름다워. 모든 '마지막'이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마지막'은 아름답다는 이유로 감정 밑에서부터 왈칵 올라오는 슬픔을 동반하기도 하지. 그런 '마지막'을 '아름다운 마지막'이라고 말하기도 하던가. 어쨌든 나의 오늘이 눈물겹도록 가슴 아린 건 아마도 그 때문인 것 같아.



  오늘은 영화 '서편제' 세트장과 촬영지, '봄의 왈츠' 세트장을 간단히 보고, 항구에 나와 점심을 먹었어. 우리 모두 조금씩은 지쳐 있었지. 하지만 치열한 뭍의 세계보다는 섬의 세계가 평화로웠기에 오후 첫배를 타야 하는 게 여간 아쉽지 않았어.



  하지만 더불어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어. 우리가 지금 느끼는 '평화로움에 대한 아쉬움'이 언젠가는 '지루함' 혹은 '지긋지긋함'으로 변색될 것이고, 머지않아 평화로운 삶보다는 분주한 도시의 삶을 동경하게 될 것이란 것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떠나기는 싫지만 여기 눌러앉아 있어도 언젠간 이런 삶에 회의를 느낄 게 뻔하다고 우리 셋 다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겠지. 이런 청춘의 변덕은 어린 아이의 투정처럼 막무가내가 아니라서 밉지는 않아. 아무것도 모르고 떼쓰는 게 아니라 모든 걸 알고 앓는 소리 하는 거라서 말야.



  어쨌든 우린 여행에 마침표를 찍어야만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써 놓은 글을 퇴고하듯 찍어둔 사진들을 자꾸만 되읽고 새로운 사진들을 또 자꾸만 채워넣었지. 기억은 아슴하게 남겠지만, 사진은 선명하게 남을 것이기에,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LCD 화면에 쉼없이 새겨 넣었어.



  그래도 지나간 시간은 새로운 시간에 묻힐 거야. 처음 며칠은 이 시간에 사로 잡혀 있을테지만, 새로운 시간들이 내려 쌓일수록 우리는 오늘의 '마지막'을 점점 망각해 가겠지. 휴대폰 사진첩의 사진들을 손가락 몇개로 무심히 쓸어 넘겨버리듯 우린 이 시간들을 무심히 넘기곤 할거야. 그리고 언젠가 어떤 기회로 이때의 시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면, 그때나 되어서야 잠깐 생각하지 않을까? 그땐 뭐 때문이었는지 참 아쉬웠었다고.



  나는 그걸 잊는 게 싫어서 그날 왜 그렇게도 우리가 아쉬워 했는지 남겨두려고. 우리가 만난 게 짧게는 18년, 길게는 24년. 그런 우리가 앞으로 이렇게 셋이 오늘처럼 떠날 수 있는 날이 또 올까? 나는 오늘의 '마지막'이 다시는 오지 않을 마지막일 것만 같아서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마음이 좀 그랬어. 시간은 흐를 것이고, 우리의 파랬던 청춘은 조금씩 물들겠지. 언젠가, 우리가 이때 공유했던 사소하고 소중했던 시간들을 하나하나 기억할 수 있을까? 지난 밤 차올랐던 슬픔과 짓궂었던 장난과 누군가에 적어 보냈던 엽서와 서로의 발바닥을 풀어주던 손길과 잠결에 곤하게 주고 받았던 말들과 까만 천체 위를 운행하던 별들과 그 밑에서 날개를 저으며 대기 위를 날던 반딧불이를... 우리가 조금이나마 떠올려 보긴 할 수 있을까? 사진 속에서처럼 지친 얼굴을 하고도 저렇게나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던 걸 훗날 어느날의 우리가 기억을 할 수 있을까?



+ 완성도가 낮은 일기가 되어 버렸지만, 이대로 둬야지. 완결성이 높아질수록 포스트를 방치해 둘 게 뻔하니까. 이렇게 두고 오래 들여다 보며 기억해야지.

+ 보영이 보고 싶다.

+ 고등학교 때에는 웅호가 있었고 대학교 때에는 웅호가 빠지고 보영이가 있었지. 이젠 우리 셋이네.

+ .... 후. ㅋㅋㅋㅋㅋ 그 외 감정표현은 삼간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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