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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로그/다이어리

2011년 7월 28일. 잡담.

by 오후 세 시 2011. 7. 28.
  그 이후 수개월이 지났다. 가끔은 당신 생각을 한다. 당신이 걷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당신의 목소리를 떠올려 본다. 당신이 웃을 때 내던 웃음소리와 몸짓도 떠올려 본다. 당신의 손가락 생김새와 당신의 표정, 당신의 옷차림을 떠올려 본다. 당신이 핸드크림을 바를 때,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칠 때, 식사를 할 때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해서도 떠올려 본다. 당신은 내게 많은 걸 남기고 갔지만 이제 나는 그런 게 어떤 것이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 이후로 수개월이 지났다.

  나에게 그때 그 일은 예상을 뒤집어엎는 전개였었다. 그런 전개를 생각한 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그때가 바로 그때일 줄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나는 한동안 당신을 탓하기도 했었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주체가 당신이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에게도 그때 그 일은 당신의 예상을 무참히 깨버리는 전개였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정리가 안되는 이야기의 주도권을 내게 넘겨줬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런 줄 모르고 어떤 이야기도 쓰려하지 않았다. 아니 당신이 내게 펜대를 넘겨준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때 나는 당신이 조심스럽게 열어놓은 문(우리 이야기의 주도권일 수도 있는)을 무시하고 내 상황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당신은 당신이 열어놓은 문으로 내가 쭈뼛거리며 들어올 것이라 예상했겠지만(그게 아니면 바깥에서 내가 그 문을 매몰차게 닫아버릴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 문은 열린 상태로 한참 방치됐었다. 당신은 그래도 오랫동안 문을 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그러니까 '내가 그 문을 통해 당신에게 가'거나, 아니면 '내가 그 문을 냉정히 닫'을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 당신이 준비한 일종의 배려였을 거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혹은 기대감이 남아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당신에 의해 열린 문은 열린 상태로 민망한 자세를 유지하다가 시간이 제법 흐른 뒤에야 당신에 의해 닫혔을 것이다. 내가 그 문을 통해 들어가지도, 내가 바깥에서 그 문을 닫아주지도 않을 것이란 확신이, 당신에게 들고 난 뒤에서야 말이다.

  때로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도 싶었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너무 넋을 놓아버린 점에 대해서, 또 의도치 않게 당신이 열어놓은 문을 알아채지 못한 것에 대해서, 그리고 당신을 그렇게 민망한 상태로 두어야만 했었던 것에 대해서도. 하지만 가장 미안한 것은 별 노력도 없이 당신을 그냥 놓아버렸던...

  그 이후 수개월이 지났다. 나의 문은 닫혀 있고 당신의 문도 닫혀 있다. 이야기는 이미 끝난지 오래. 비가 내리니 오래 묻혀 있던 이야기 더미들이 쓸려 나온다. 배수가 안되는 머릿속에서 이야기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그 이후 수개월이 흘렀지만 도통 소화되지 않는 당신과 나의 이야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