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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로그/다이어리

2011년 4월 15일. 투정.

by 오후 세 시 2011. 4. 16.

#01 이해

 힘들다. 누군들 힘들지 않은 날들을 살아가겠냐만, 어쨌든 자신에게 닥친 힘겨움은 자신만의 것이기에... 나는 힘들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스마트폰으로 신문 기사를 읽다가 울 뻔 했다. 그냥 약간의 슬픔이 묻어나올 그 정도로만 마음이 짠했단 얘기가 아니다. 눈물이 그렁하게 차 올라서 버스 창 밖 먼 도시의 풍경들을 바라봐야만 했을 정도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면 버스에서 내려야겠단 생각을 했을 정도로, 나는 많이 슬펐다. 버스 한 귀퉁이에 앉아서, 나는 온 힘을 다해 터지기 직전의 울음을 욱욱 우겨넣어야 했다.

 날 슬프게 한 그 기사는 동년배의 남학생들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뒤 불량스런 삶을 살아가야만 했던 한 소녀와 그 소녀를 재판한 한 판사에 관한 기사였다. 불처분 판정을 통해 나약한 한 소녀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려 했던 판사와 자신이 이해받고 있다는 사실에 목이 메어 판사의 선창에 따라 "이 세상은 나 혼자가 아니다"를 외치던 소녀. 그들의 모습에서 내가 본 것은 다름아닌 이해였다. 소녀에 대한 판사의 이해라고 말하는 게 더 분명하겠다. 어쨌든 나는 이해받고 있는 그 소녀가 부러웠다.

 누군가로부터 이해받는다는 건 엄청난 특혜라고 생각한다. 내 삶 하나 짊어지고 가기도 힘든 요즘같은 세상에서 이해를 바란다는 건 요행을 바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 준다니!! 내가 슬펐던 건, 판사가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그 소녀를 이해해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내 곁에는 나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02 이기심

 인간은 이타적 유전자를 타고난다, 고 한다. 맹자의 사단 중에 '측은지심'이 속해 있는 것을 보면, 옛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란 늘 이타적일 수만은 없다. 맹자의 성선설과는 반대로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했다. 인간은 본래 악하다는 건데, 이는 곧 인간이란 존재가 천성적으로 자기 본위로 생각하게끔 되어 있다는 말과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주길 바란다, 는 생각이 이기심의 발로임을 안다. 그래도 난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이해란, 자신의 입장을 내던지고 상대를 끌어안을 수 있을 만한 이해를 말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누군가 재미없는 농담을 한다. 이에 대한 반응은 여러가지가 나올 수 있다. 1. (즉각적으로, 있는 그대로) 재미없어, 병신같아. 2. (재미없음에도 불구하고 안 웃어주면 무안해 할까봐) 와. 재밌다. 하하하. 3. (진심을 다해서) 그걸 농담이라고 하냐, 이 맹추야. 4. (얘가 왜 이러지?) ㅋㅋㅋ 뭐야 그게. 이 중에서 그나마 좀 올바른 것을 찾자면 4이다. 중요한 건 생각이다. 얘가 왜 이럴까?, 라는 생각. 그리고 표현은 상대를 깍아내리지 않는 한에서. 그러니까 2번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2번은 생각이 글렀다. 표현만 좋다. 병신같은 짓을 하는 친구를 보면서, "아, 병신같아."라고 말하기 전에, 얘가 왜 이런 병신같은 짓을 할까, 를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고 하면 될는지.

 이기심인 걸 알지만, 그래도 난 누군가가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아니 적어도 이해해주려고 노력하기를 바란다. 그래, 나 이기적이다. 근데 뭐, 나만 그런 건 아니잖아.



#03 적당히, 쏘쏘

 내 주변에도 물론 나를 그렇게 이해해주려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진짜 세 손가락 안에 꼽을까 말까 한 정도?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그들은 관계의 깊이를 일정 수준까지만 유지하려 할 뿐이다. 더 깊이 들어가기를 꺼려하고 부담스러워 한다. 딱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불대고 적당히 관심 가져 주고 적당히 연락하고 적당히 이해하려고만 한다. 자신에 대해 깊이 알려고 하는 것을 싫어하고 자신의 과거, 자신의 신상에 대해 캐묻는 것을 혐오스러워 한다. 적당히, 쏘쏘하게 그저 매번 유지하던 그 수준으로만 가자는 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관계이다.

 나는 그런 관계에 회의가 든다. 적당히 담궜다가 적당한 시기에 발 빼려는 수작처럼 보인달까. 물론 진심은 그게 아니겠지만서도. 내가 상대방을 향해 나아가려하는 만큼 다가와주지 않으니, 때론 이렇게 상대를 곡해하기도 한다.



#04 투정

 이런 얘길 한다면, 내게 이렇게 말할 사람들이 많을 거다. "아,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래서 뭐 어쩌자는 게 아니다. 한 번 들어보란 거다. 내 얘기.

  그러니까 그냥 투정부리고 떼쓰는 거다. 어쩌고 말고 하자는 게 아니라.



#05 ...

 참 웃기다. 아까 이기적이란 얘길 했지만, 이런 얘길 또 여기에다 적으면서 아무도 이해해주려고 하지 않는다고 징징대고 있다. 근데 이런 얘기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더라.

 그리고 내가 이해받길 원하는 건, "그럴 수도 있겠네."라는 그 순간의 인정같은 건데, 보통의 경우는 다들 자기 생각 이야기하느라 바빠서. 종종 '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이해를 받으려다 남들 이해하는 짝이 되어버린달까.

 헌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누군가를 이해해준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러니까 그 기사에 나왔던 그 판사님은 참 대단한 거였어.

 그리고 자꾸 이해만 해달라고 하고 남들 이해할 생각 안하는 난 이기주의자. 뭐, 나만 그런 건 아니지 않냐고. 왜, 뭐.




+ 오늘 두통이 심하긴 심한가보다. 생각들이 꽃을 못 피우네. ㅋㅋ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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