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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더미/독서 노트

2010년 1월-6월 독서 목록

by 오후 세 시 2010. 7. 18.


아내가결혼했다(제2회세계문학상당선작)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박현욱 (문이당,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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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내 이모네 집에 둥지를 틀었는데 마침 사촌 동생들 책꽂이에 <아내가 결혼했다>가 꽂혀 있길래 되읽어 봤다. 08년도에 읽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 아마도 영화를 보고 난 이후였기 때문인 것 같다. 읽는 내내 영화를 다시 보는 듯했지만, 활자로 읽어 내는 이 소설의 매력은 영화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매력과는 또 다르다. 연애와 결혼을 축구와 병치시키는, 박현욱의 이 신선한 비유는 여전히 나를 웃음짓게 만든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사고가 틀어막혀 있다는 증거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중요한 건, 이런 일을 인정할 수 있느냐 인정할 수 없느냐가 아니라, 비현실의 가능태를 수용할 만한 자세를 갖추고 있느냐, 없느냐이다. 박현욱은 비현실의 가능성을 수용하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것을 위트있게 풀어낸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건대, 중요한 건 '결혼한 아내'가 아니라 그처럼 충격적으로 다가올 만한 일련의 사건이다. 만약 내 아내가 결혼하겠다고 한다면? 당연히 미쳤냐고 되묻겠다. 하지만 덕훈처럼 인아에게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열린 사고로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건을 타당하게 마무리 지을 줄 아는 자세도 필요할 것이다.


청춘의독서세상을바꾼위험하고위대한생각들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 인문교양
지은이 유시민 (웅진지식하우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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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울이)가 필리핀으로 떠나기 전, 외롭게 서울 생활을 하게 될 오빠(나)를 위해 선물해줬던 책이다. '지식인이란 자고로 저런 책들을 섭렵해 읽는구나', 라는 동경심을 가짐과 함께 '나는 그 나이 때에 도대체 뭘 하고 산 건가', 라며 자조했던 게 떠오른다. 유시민이라는 지식인을 있게 한 책들을 살펴보고 그 책들에 대한 글쓴이의 생각들을 읽어내는 시간은 참으로 풍성한 시간이었다. 책을 모두 읽고 난 뒤에는 '저 사람은 저 나이 때에 이런 책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떠올렸구나', 라며 부러워했다. <청춘의 독서>를 읽고 난 뒤 나를 키운 책들에 대해 떠올리며 다음과 생각들을 했다. '지식인이란 자고로~'라며, 구체적이지 못한 막연한 동경심을 가지는 것은 오류라고, 그리고 내 과거를 부정하려 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청춘의 독서>를 읽으니 나를 키운 책들이 떠올랐다.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 책들을 읽혀 보고 싶었다. 유시민의 마음도 아마 동일한 맥락이지 않았을까? 그의 청춘을 가득 채웠던 책 목록을 엿보는 건 정말이지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역사란무엇인가(고전으로미래를003)
카테고리 역사/문화 > 역사일반 > 역사이야기
지은이 카 (홍신문화사,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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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의 독서> 목록 중 하나였던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헌책방에 가서 냉큼 샀다. 나는 상대적인 것을 좋아한다. 아마 카도 그랬던 것 같다. 관심없는 유럽의 역사는 전혀 흥미롭지 않았지만, 카가 이야기하는 상대적인 역사는 단연 나를 압도했다. 무엇도 결정된 것은 없다. 역사에 있어서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도 거의 있을 수 없다. 다만 부단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역사는 이어질 뿐이다. 책의 재목이 '역사란 무엇인가?'이다. 카는 이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결과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역사에 대한 카의 생각은 과거의 것이지만, 역사가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점에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와의 대화는 살짝 힘겹긴 했지만 즐거웠다.


크로스무한상상력을위한생각의합계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 인문교양
지은이 정재승 (웅진지식하우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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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성적인 과학자 정재승과 날카로운 미학자 진중권의 현재를 관통하는 21개의 키워드에 대한 사담(私談) 릴레이. 정재승의 과학적 접근법은 감성적이라 마음을 움켜쥐고, 진중권의 미학적 접근법은 날카롭고 예리해서 이성을 뒤흔든다. 21개의 각각 다른 키워드에 대해 두 사람은, 동일한 생각을 다른 관점에서 풀어내기도 하고, 다른 생각을 각자의 개성대로 펼쳐보이기도 한다. 나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현대의 우리들은 주변의 텍스트를 주워 먹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 두 사람은 주워 먹은 텍스트를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소화해 낸 텍스트들은 그래서 참 개성적이다. 기존의 텍스트 A와 정재승과 진중권의 머릿속에서 소화되어 나온 텍스트 A'. 이제 주워 먹기만 하던 우리가 소화할 차례이다. A"가 나온다면 참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재승과 진중권을 독립된 개별 텍스트로 삼아서, 그들 식대로 그 두 사람을 소화하고픈 소망이 있다. 나만의 소화법은 이러면서 배우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스키너의심리상자열기세상을뒤바꾼위대한심리실험10장면
카테고리 인문 > 심리학 > 교양심리
지은이 로렌 슬레이터 (에코의서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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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심리학에 대해 배우다 보면 '스키너'를 빠뜨릴 수가 없다. 조작적 조건화라는 그의 이론이 시험 문제에 자주 출체되기 때문이다. 스키너의 이름에 끌려 읽게 된 책이긴 하지만 더 많은 것들을 아는 계기가 됐다. 이 책에는 스키너의 행동주의 이론 뿐만 아니라 달리와 라타네의 '방관자 효과',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 부조화 이론', 해리 할로의 '애착 심리학'과 같은 익숙한 이론들이 개별 챕터로 등장한다. 게다가 심리학 젬병인 내게 신기성 그 자체로 다가왔던 여러 가지 판타스틱한 심리 이론들이 속속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브루스 알렉산더의 '마약 중독 실험',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의 '가짜 기억 이식 실험', 데이비드 로젠한의 '정신 진단 타당성에 관한 실험', 스탠리 밀그램의 '불합리한 권위에 대한 복종'. 이 밖에도 더 있지만, 이 정도만 봐도 왠지 책장을 넘기고 싶어서 손이 근질거리지 않는가? 이론서일 것 같아 꺼려지는 참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책은 그런 딱딱하고 재미없는 이론서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는 각 심리학자들과 그들의 이론, 혹은 실험 등이 옛날 이야기처럼 펼쳐지면서 그것들 때문에 야기됐던 오해와 충격들이 신문에 쓰여진 연예 기사처럼 흥미롭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로렌 슬레이터의 감수성이 그 서사들과 부드럽게 융화되면서, 각 챕터들은 한 편의 스릴러 영화로, 서정시로, 휴먼 드라마로, 명쾌한 보고서로 우리 앞에 그 자태를 우아하게 드러낸다. 그저 필독을 권할 뿐이다.


지금은간신히아무도그립지않을무렵(문학과지성시인선156)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 현대시
지은이 장석남 (문학과지성사,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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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2학년 때 이 시집을 사 들고 지면이 닳아라 읽었던 때가 있었다. 첫사랑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이 늘 나를 괴롭히던 때였는데, 이 시집이 나를 위무해 주었다. 이 시집을 읽으며 치기어린 마음에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냐며 시집 제목처럼 대책없이 아무도 그리워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게 떠오른다. 시집을 몇 번이나 재차 읽고 난 뒤에 느꼈다. 마음에서 이는 감정을 거부하지 말고 차분하게 인정하는 것이 나와 첫사랑의 비뚤어진 관계를 올바르게 완성해 나가는 길이라는 것을. 떠나간 것은 떠나간 채로, 남겨진 것은 남겨진 채로 인정하는 것. 물론 열 여덟 살의 내게 그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문학 수련회에 갔다가 장석남 시인을 실제로 만나게 되었다!! 장석남 시인의 수더분함이란 참으로 서정적이라는 말 이외의 것으로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시와 그 시를 쓴 시인의 모습이 일치되는 것을 보기란 분명 흔치 않을 것이라고 나는 아직까지도 믿는다. 난 그에게서 그의 사인이 담긴 시집을 또 한 권 받았다. 그래서 내겐 이 시집이 두 권이나 있다. 문학 수련회에 다녀온 뒤에 나는 떠나간 첫사랑을 인정하기 위해 오래 노력했다. 첫사랑이 완전히 내 마음에서 떠나갈 때까지, 내가 스스로 올곧게 설 수 있을 때까지 아주 오래 노력했다. 결과는 참 슬픈 것이었지만, 그 슬픈 감정까지 인정하는 것이 내가 감내해야 할 몫이었다. 참 그보다도 그때 이메일까지 받으며 장석남 시인에게 시공부 허락을 받아냈었는데, 내가 미쳤던 건지, 시 한 편 보내질 않았었다. 그저 첫사랑에만 눈 먼 애송이여서 그랬던 것 같다. 천추의 한이다.



공무도하사랑아강을건너지마라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김훈 (문학동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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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기형네 집에 갔다가 업어 온 책이다. 이 책을 건네주던 상기형의 말이 생각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너무 현실적이고 너무 참담해서 기운이 빠질 거라던. 그럴 법도 한 게, 이 책은 마치 신문기사를 읽는 것마냥 건조하기 짝이 없다. 창야와 해망과 서울. 세 곳을 오고 가며 엮어지는 이야기들은 마치 사회면 기사들을 엮어놓은 것처럼 전달해야 할 것만을 전달할 뿐이다. 그러나 이 딱딱한 기사 같은 글을 읽으면서도 우리는 그 표면이 들추어진 이면의 자리에 무엇이 있을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일상 속의 빈궁함, 채워지지 않는 욕망과 욕심, 삶을 지탱시켜 나가기 위한 이기심, 익숙한 것에 대한 무관심과 새로운 것에 대한 경계심, 타인에 대한 불신, 이질적인 것들을 향한 폭력성, 그리고 돈돈돈. 책 제목이 <공무도하>인 것은 이 편의 세계가 너무나 추악한 곳이고, 그래서 강을 건너 저 편의 세계로 가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저 편의 세계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공무도하>가 그려내는 이 편의 세계는, 즉 텍스트 이면에 숨겨진 솔직한 현실의 공간은, 상기형 말마따나 너무 참담해서 기운을 빠지게 만든다. 저 편의 세계, 무지개 너머의 어딘가는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오늘의시.2010
카테고리 시/에세이 > 장르시 > 현대시
지은이 편집부 (작가,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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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오랜만에 요즘 시들이 읽고 싶었다. 시를 읽은 지 오래되어서 갈증같은 것이 났었나 보다. 처음엔 시를 열심히 읽었는데 시가 너무 어려웠다. 쉽게 읽으려고 노력했는데도 어려운 건 어렵게만 읽혔다. 독자인 내 내공이 부족한 것을 탓해야 하는 것인지, 대중과 멀어진 시들을 탓해야 하는 것인지, 알쏭달쏭했다. 그래도 몇 편들은 감수성 흥건한 내 마음을 쿡쿡 찔러대기도 했다. 시가 읽고 싶어서 펼쳐들었는데 어려운 시들이 많았다고 불평하진 않으려 했다. 내가 먼저 손을 뻗었으면, 내가 그 대상에게 가까이 가려 노력해야 하는 것이니까. 시를 읽으며, 젊은 나이에 시인이 된 사람들을 부러워 했고, 시를 쓸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을 시샘했다. 쪼잔하기 때문에 그랬던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아직도 내가 시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시인들을 동경하기 때문이라고, 그렇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를 읽는 독자로서 더 분발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해 본다.


만들어진신신은과연인간을창조했는가?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 인문학의이해
지은이 리처드 도킨스 (김영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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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우보이 비밥 23화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인간이 어째서 신을 믿는다고 생각하나? 믿고 싶기 때문이야. 이 썩어빠진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알겠나? 신이 인간을 만든 게 아냐. 인간이 신을 만든 거지." 나는 이 말이 절대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유신론자들에게 흔히 하는 말을 빌리자면, 위의 대사는 검증된 바가 없이 가설에 머물러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인지, 인간이 신을 창조한 것인지, 에 대해 유신론자와 무신론자가 말뿐인 언쟁을 벌이면, 두 사람의 대화는 늘 평행선을 달린다. 소위 객관적 증거라 부를 만한 실체를 대화 속에 제시하지 않고 말장난에 불과한 논쟁을 벌이기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은 말 뿐인 종교 논쟁에 실재하는 증거들을 개입시킨다. 그 증거들은 우리가 머무르는 현 시대의 한도 내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과학적이고 타당하기에 객관적인 힘을 지닌다. 몇몇 유신론자들은 도킨스가 무너뜨린 유신론과 무신론의 균형을 대칭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도킨스가 써낸(종교 논쟁의 소지가 있는) 일련의 서적들을 대상으로 온갖 유신론적 가설들을 필사적으로 들이밀곤 한다. 그런데, 그들의 가설이란 것들이 모두 비논리적이고 초현실적이라 고개만 갸우뚱하게 만든다. 그들의 가설을 살짝 비유하자면, "보이지 않는 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거지?"라는 질문에 "보이지 않으므로 신이다."라거나 "영적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대답하는 식이랄까? 그 외의 가설들, 이를테면 인간이 증명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은 신이 태초에 모두 이룩해 놓은 것이고, 그것들을 인간들이 서서히 밝혀나가고 있는 것 뿐이라는 식의 논조는 유치한 궤변 유신론의 진수를 보여준다. 성경은 읽지도 않고 종교 논쟁에 관해 말놀음만을 늘어놓는 무신론자나 신의 존재가 불투명하다고 느껴 중립을 지키고 선 회의론자, 무신론과 관련된 서적들을 사탄의 책이라 남몰래 치부하며 거들떠 보기를 꺼려하는 유신론자들은 모두 이 책을 꼭 한 번은 보길 바란다. 존재하지 않는 신에 관한 도킨스의 실재하는 증거들이 평행선을 달리는 유신론자와 무신론자, 회의론자들의 대화 방향을 꽤 흔들어 놓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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