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의 네가
서른 살의 네가 기억할는지 모르겠다. 열 여섯 살의 네가 비 오는 날 내게 적어 보낸 편지에, 이런 날은 센치해진다고 비처럼 잔잔히 읊조렸던 것을. 그 이후로 창가에 빗방울이 빼곡히 듣기 시작하면, 나는 이유없이 센치해진 마음으로, 열 여섯 살의 너를, 열 여덟 살의 너를, 그리고 스무 살, 또 서른 살의 너를, 가만히 떠올리곤 했다. 그래서 열 여섯 살 이후로 내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너는 어디에든 있었다. 바람이 구름을 밀어 오고 잎사귀들이 조용히 일렁이면, 그리고 쌀알처럼 빗방울이 하얗게 흩어지며 쏟아지기 시작하면, 내 마음은 충만에 달뜨기도 하고 빈곤에 허덕이기도 하며 너와 나 사이의 뵈지 않는 간격을 오랫동안 가늠해 봤다. 센치해진 마음으로 떠올리는 '너'는 여백 위에 수성펜으로 써놓은 글자 ..
2010. 7.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