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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로그/에피그램

이따금씩 그런 저녁

by 오후 세 시 2009. 5. 11.

그때,
유월의 저녁이었어,
막 여름이 시작되고 풀내음이 짙게 맡아지던.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 나뭇잎끼리 부대끼는 소리가 났어.
기름에 쩌들어 검어진 흙들이 깔려 있는 유류고에서
나는 그 편지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읽었었는데.
네가 돌아오던 경춘선 마지막 열차 소리가
멀리서 멀리서 들리는 듯했어.
짧았던 오후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는데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어. 아무 것도.
너를 생각하고
왜 우리가 손을 놓아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유를 생각하는 일 외엔,
아무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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